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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편지에 담긴 일상의 이야기들
<현풍 곽씨 편지>
글. 정대영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기다리면 오지 않고 기다림이 지쳤거나
기다리지 않을 때 불쑥 찾아온다.
그래도 반가운 손님.

- 나태주 詩, ‘편지’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픈 욕망을 느낀다. 몸짓이나 언어를 넘어 멀리 떨어진 이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오랫동안 편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편지는 즉각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매체의 특성상 단어 하나하나에 숙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손을 떠난 본문의 내용은 제삼자의 손을 거치는 것이 통례이므로 화자와 답자는 무의식중에 절제된 언어와 자기 검열을 거친다. 문자가 지식인의 산물이던 전근대 사회에서 편지라는 형식은 일정 지식수준 이상에서 허용되는 행동이었음이 분명하다. 한문 일변도의 남겨진 편지 가운데 옛사람들이 쓴 한글 편지는 그래서 현재의 우리에게 푸근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현대 지도에서 현풍 소례마을 위치
김정호의 동여도(1859년경) 속 현풍군

근래 들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한글 편지가 발굴되어 소개되고 있다. 선비의 한글 편지는 대다수가 아내에게 쓴 경우다. 이러한 한글 편지에는 소박한 모습을 엿볼수 있는 여러 사례가 등장하는데, 딱딱한 한문 편지보다 내용이 자유롭고 가정에 관한 주제가 많다. 그 가운데 곽주郭澍(1569~1617)의 사례는 17세기 초 대구 지역에 살았던 선비의 삶을 100여 장의 편지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다. 1989년 현풍에 있는 진주 하씨의 묘를 이장하던 중 172매의 한글 편지가 발견되었다.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08매는 곽주가 쓴 편지였다. 그의 편지는 아내뿐 아니라 노비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다종다양하다. 그렇다면 그의 편지 속 옛사람의 삶은 어떠했을까?

곽주는 슬하에 4남 5녀의 자녀를 둔, 현풍에 터를 잡은 선비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와 함께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첫째 부인 광주 이씨와 사별 후진주 하씨와 재혼했는데, 전처 아들과의 갈등으로 하씨는 분가를 한다. 그리하여 곽주는 소례, 하씨는 논공에서 떨어져 살았기에 서로의 안부를 편지로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곽주는 지역의 명문가 출신이자 의병장으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배경만으론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편지에는 한 인간으로서 번민과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곽주의 편지에는 아내와 떨어져 살아가는 집안 갈등,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는 자책감, 지인과 나이 든 시종들에 대한 연민 등이 나타나 있다.

먼저, 곽주가 자식에 대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살펴보자. 1612년 5월 15일에 보낸 편지에서 곽주는 장모에게 편지를 보내 아이들에게 한글을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당시 아이들의 한글 교육을 외할머니가 담당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성들이 한글 사용에 능통했음을 알 수 있다. 곽주의 자식 사랑은 여러 편지에 등장한다. 1606년 이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다른 편지에는 곽주가 딸 정냥이의 머리에 난 종기를 걱정하며 약을 발라 잘 치료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딸의 종기는 잘 낫지 않은 모양으로 여러 편지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확인된다. 다른 날의 편지에는 아이의 관례를 치를 준비를 부탁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편지는 17세기 초 관례 준비 과정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료이기도 하다.

곽주의 편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내 하씨에 대한 것이다. 가족 간 불화로 인해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곽주의 입장에서 하씨에 대한 걱정은 늘 지워지지 않는 짐과 같았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편지에서 미안함과 걱정을 담아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곽주가 결혼 초기에 보낸 편지 ‘삼 년은 눈을 감고 귀를 재우고 견디소’에는 이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으니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분가가 시작된 후 보낸 편지 중에는 임신한 아내에 대한 걱정이 눈에 띈다. ‘산기가 시작되거든 즉시 사람을 보내소’, ‘아마도 달을 잘못 헤아렸는가 싶으이’, ‘딸을 또 낳아도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등. 산기를 걱정하는 남편의 모습과 자신이 날짜를 잘못 헤아렸지만 바로 연락을 달라는 내용, 딸이라 해도 걱정 말고 아이를 잘 출산하라는 내용 등에서 따스한 애정이 살펴진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과거시험에 합격해 급제하는 것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자 임무이기도 했다. 자신의 영달뿐 아니라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도 그러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곽주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편지에는 그가 과거 보러 가는 내용이 나오는데, 합격한 사람을 부러워하는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그중 ‘둘 중하나라도 급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거시험을 치른 뒤 곽주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과 아들 중 한 명이라도 합격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내용을 쓸쓸히 전하기 때문이다.
곽주의 편지에는 주변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난다. ‘쇠고기는 장모께 드려 잡숫게 하소’라는 편지에서는 제사가 끝나면 쇠고기를 잘 챙겨 장모님을 드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장모를 챙기는 마음이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또 다른 편지 ‘차라리 도망쳐 나갔던들…’에는 아끼던 종이 곽란에 걸려 세상을 떠났음을 애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차라리 도망치면 살았을지 모르는데, 자신의 집에서 끝내 죽음에 이른 시종에 대한 착잡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곽주의 한글 편지는 선비들이 단순히 당쟁이나 형이상학 지식에만 매몰된 사람들이 아닌, 현재 우리처럼 희로애락을 느끼며 하루를 살아갔던 이들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아마도 시대, 이념은 변해가지만 인간 본연의 감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400여 년 전 편지를 보며 함께 웃고 안타까워하는 까닭 속에는 우리 서로가 감정이란 이름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본다.

곽주가 보낸 편지 사례 1 ‘(장모님)어린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십시오’
현풍 곽씨 편지 부디 상(床)을 곁에 놓아두소서
현풍 곽씨 편지 딸을 또 낳아도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현풍 곽씨 편지 둘 중 하나라도 급제하면 얼마나 좋을까
현풍 곽씨 편지 사례 2 쇠고기는 장모께 드려 잡숫게 하소
곽주가 보낸 편지 사례 2 ‘차라리 도망쳐 나갔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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