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박물관
시대의 아픔 속
유물의 흔적
글. 최정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사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의 성과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는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일본인 학자에 의한 고적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1915년에 설립한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고적조사사업의 중심 기관으로 평양, 경주, 부여, 공주 등 우리나라 옛 수도를 비롯해 한반도 전 지역을 조사했다. 당시의 발굴·수집품은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1945년 광복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접수되었다.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박물관 공문서와 지도, 유적·유물의 도면 및 사진 등 조선총독부박물관이 30년간 생산한 각종 자료도 전해졌다.

일제강점기 자료의 종류와 성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자료는 크게 발굴·수집품, 문서, 유리건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한반도 곳곳을 조사해 다량의 소장품을 수집했다. 특히 낙랑, 신라, 백제 등 대형 무덤 발굴조사에서 그간 본 적 없는 화려한 유물이 대거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진열할 가치가 있는 것은 등록해 관리했으나, 15만여 점의 유물은 나무 상자에 넣은 채 미 정리 상태로 국립박물관에 접수되었다.
문서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45년까지 30여 년간 생산한 공문서다. 여기에는 고적조사 관련 복명서·출토품 목록, 유적·유물의 지역별 현황 및 수리 과정, 문화재 구입·발견·기증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보통 공문서는 총독부 문서과에서 일괄 관리했으나, 박물관 문서는 유물과 관련한 자료가 포함되어 자체적으로 보관했기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남았다.

평양 오야리 18호분 고적조사 복명서

유리건판은 유리판에 젤라틴 유제를 도포해 이미지를 촬영한 사진 원판이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를 위한 기초조사 사업으로 우리나라 전역과 만주 등지의 고고, 미술, 건축, 민속, 자연환경 등을 촬영한 유리건판을 제작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유리건판은 총 3만8170장이다.
이 밖에 고적조사 시 측량한 유적·유물의 도면, 금석문 탁본, 문화재 관련 신문 기사, 다양한 종류의 근대지도 등 박물관 업무 관련 자료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주 송산리 6호분 현실 북벽과 천장

일제강점기 자료의 중요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자료는 당시의 고적조사, 유물 관리·보존, 전시 등 문화재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단순히 소장품을 관리·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문화재 관련 정책과 행정을 총괄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고적조사는 삼국시대의 초대형 무덤이나 중요 유적을 대상으로 해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당시에는 일부만 선택적으로 보고되어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고고, 역사, 미술사 등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국립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자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박물관 내에서도 일제강점기 자료를 정리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으나 수량이 방대하고 관련 기록이나 정보가 결실된 채 오랫동안 여러 부서에 분산되어 있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990년대 후반 발간된 문서 및 유리건판 목록집은 자료의 성격과 규모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자료로 이후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의 발판이 되었다. 2000년부터는 『경주 노동동 4호분』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자료를 유적별로 정리한 ‘일제강점기자료조사보고’를 발간했고, 그 결과를 반영해 다양한 전시도 개최했다.
2010년대에는 일제강점기 자료의 일반 공개 요구에 맞춰 온라인 공개사업도 진행했다. 이렇게 진행하던 일제강점기 자료 정리 작업은 2013년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으로 통합되었다.

금관총 금관
평양 석암리 9호분 금제허리띠
창녕 교동 89호분 은제허리띠꾸미개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의 의미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국립중앙박물관 위주로 이루어진 자료 정리를 경주, 부여, 대구 등 소속박물관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금관총, 금령총 등 신라왕릉을 재발굴해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조사 결과의 오류를 밝히고 신라 무덤의 구조와 축조 기술에 대한 새로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시 달성군 일대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자료를 연속적으로 공개해 신라의 지방 거점으로 발전해가는 대구 지역의 고고학적 양상을 밝히고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함안, 창녕 등에 위치한 대형 고분군 고적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가야와 신라의 교류 및 성장에 관한 중요한 연구 성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백제 무덤과 사찰에 관한 자료를 통해 웅진·사비기 백제 도읍의 발전 및 변화 과정을 규명하고 있다. 이렇게 소속박물관의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은 해당 지역에 관한 중요한 학문적 성과를 도출하는 것은 물론 이를 전시 및 교육등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낙랑, 고구려 등 남한에서 보기 힘든 북한 지역의 자료 공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낙랑은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성장과 관련한 중요한 문화 중심지로 거론되고 있으나, 남한에는 관련 유적이 없어 고고학적 규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낙랑 유물과 자료는 이러한 학문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이 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중국, 중앙아시아 등 국외에서 수집한 다양한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대구 달성유적 50호분 제1곽 출토 토기 세척 모습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의 방향과 과제

2022년은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은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의 정리와 공개를 최우선으로 진행했다. 현재 대부분의 문서와 유리건판은 온라인으로 공개되어 누구나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또 고적조사 출토품과 당시의 조사기록, 사진 등을 정리하는 재조사도 꾸준히 진행해 현재까지 41권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최근 10년의 집중적 조사와 공개로 일제강점기 자료에 대한 기본적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이제는 자료의 공개를 넘어 ‘활용’에 무게를 둘 때다. 유물과 유적 하나하나에 대한 정리 결과를 모아 다각적 해석과 고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출토 상황과 맥락을 잃은 자료 조사의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생산한 자료 전반으로 연구 대상을 확대해야 하며, 자료의 연구 방법도 더욱 다양해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10년은 지난 10년보다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부여 외리 유적 문양전 출토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