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톺아보기
시선視線
그리고 심상心像
글. 전준엽 서양화가
강희안 <고사관수도>와 카라바조 <나르시스>
정선 <인왕제색도>와 세잔 <생트 빅투아르산>
서양 회화와 우리 회화를 짝짓다 보다보면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표현하는 작가 저마다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익숙한 그림 속에서도 화가의 삶, 시대, 문화적 맥락에서 들여다본다면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던 그림이 건네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흐르는 물

‘명경지수 明鏡止水 ’와 ‘상선약수 上善若水 ’는 물의 속성에 빗대 세상 이치를 이야기하는 은유다. 명경지수는 멈춰 있는 물, 상선약수는 흐르는 물이다. 밝은 거울처럼 정지돼 있는 물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상선약수는 다툼 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을 끌어안는 물의 성질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려는 태도다. 서양에서 명경지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고 세상을 해석하려 했다면, 동양에서는 상선약수를 통해 마음의 다스림을 찾으려 했다.
강희안 姜希顔[1417~1464] 의 <고사관수도>는 상선약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작은 크기(23.4x15.7㎝)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이다. 세련된 필력으로 거침없이 그려낸 작가의 솜씨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강희안姜希顔(1417~1464), 조선 15세기, 종이에 먹, 23.4x15.7㎝, 본관2504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운 선비의 표정이 마음에 남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 그림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선비다. 짙은 먹과 면 터치로 표현한 바위와는 달리 선으로만 그렸는데도 그렇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물의 성질이 선비를 표현한 방식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선비는 머리가 벗겨진 중년인 듯한데 표정은 어린아이 같다. 얼굴 생김새와 치장에서 중국 사람이 떠오른다. 조선 초에 받은 중국의 영향인 듯싶다.
그림 전체가 마치 흐르는 물 같다. 배경에 절벽이 있고 물가 바위에 선비가 엎드려 물을 바라보고 있는 풍경의 정황으로 볼 때 아마도 강이나 계곡 혹은 호수를 생각하고 그린 것으로 보인다. 물을 표현한 부분에 수평 터치가 드러나 있으니 흐르는 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선비의 참모습을 흐르는 물로 비유한 작가의 심중은 그림 전체를 감도는 분위기에서 보인다. 구체적 장소에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린 것이 아니라 물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며, 모든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 행로가 아닐까 하는 작가의 생각을 담은 관념적 풍경이다. 욕심이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을 닮으려 했던 조선 참선비의 정신을 담았다.

멈춰 있는 물

카라바조 Michelangelo da Caravaggio[1417~1464]가 그린 <나르시스>는 물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자기애를 강조한 작품이다. 나르시스 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24세에 제작했다. 400여 년 전에 그려졌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 감동을 준다. 예술가의 재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명쾌한 해답이 되기에 충분한 걸작이다. 카라바조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화면을 극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택한다. 어두운 배경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을 대비시키는 방법이다. 그래서 흡사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그런 특징이 효과적으로 나타나 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 인간만 부각시켰다.

나르시스 Narcissus 카라바조(1517~1610), 1595년경, 캔버스에 유채, 92.0x110.0㎝, 바르베리니궁 국립미술관 소장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출처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명암의 강한 대비 때문에 그림의 내용에 몰입하게 된다. 흡사 나르시스가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빠져 있는 상황만 간추려 그렸는데도, 우리는 이 그림이 나르시스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구성도 현대 회화를 능가한다. 화면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무릎을 중심으로 원형 구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집중력이 더욱 부각된다.
특히 무아지경에 빠진 얼굴 표정은 압권이다. 자기애의 절정에서 나온 명품이다. 서양 회화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카라바조는 오만할 정도로 나르시스트적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을 보거나 명경지수의 은유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길 겨를도 없이 자신만을 바라보겠다는 직설법이다. 인간 중심이라는 서양인의 개인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평면에 담은 에너지

겸재 정선鄭敾[1676~1759]과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은 산을 그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천재들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겸재는 매일 마주했던 인왕산에서 한국 산천의 진짜 모습을 찾아냈고, 이를 조선 고유의 화법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로 확립했다. 세잔 역시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의 산 생트 빅투아르에서 자연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해 현대미술 혁명의 길을 열었다. 정선의 작품 중 <인왕제색도>는 대중적 인기가 가장 높은 그림이다. 비온 뒤의 맑은 기운을 머금은 인왕산의 모습이다. 지금의 광화문쯤에서 바라본 구도다. 실제 인왕산과 그림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다. 겸재 진경산수화의 특징인 변형과 과장, 생략의 기법 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정선鄭敾(1676~1759), 조선 1751년, 종이에 먹, 79.2x138.0㎝, 국보, 이건희 기증

주 봉우리를 중심으로 마치 오목거울로 본 듯한 구성이다. 그림 중앙의 구름을 향해 봉우리들의 산세가 부챗살처럼 모여들고 있다. 가운데 바위산을 비롯해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봉우리들도 조금씩 왜곡된 모양으로 그렸다. 겸재는 봉우리 사이의 밋밋한 선을 생략하고 산의 윤곽선을 그려 산세를 강조했다. 비에 씻겨 청량함을 머금고 더욱 힘찬 기운으로 또렷하게 보이는 인왕산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한 주관적 구성 방식이다. 장쾌한 에너지가 불쑥 솟는 인왕산을 보았을 때의 가슴 벅찬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었으리라. 섬세한 감성을 지닌 겸재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느낌을 온전히 그림에 담고 싶어 했다. 거대한 바위에서 솟구치는 힘은 짙은 먹과 붓질로 평면화해서 추상적으로 보인다. 이렇게 그린 주 봉우리의 꼭대기가 화면 밖으로 잘려나가 현대적으로 보인다. 최근 밝혀진 바로는 작가의 의도는 아니다. 원래 주 봉우리의 외곽선까지 그렸는데,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고, 표구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됐다고 한다. 이런 실수 탓에 인왕산의 힘찬 느낌이 배가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평면에 표현한 각도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산을 소재로 60여 점을 그렸다. 이 산은 그에게는 숙명과도 같았다. 1906년 10월 15일,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운명의 날도 이 산과 마주하고 캔버스와 씨름하고 있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우로 폐렴에 걸려 일주일 후 죽음을 맞고 말았다. 세잔은 이 산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그토록 집착했을까. 그는 회화가 이야기를 표현하거나 현실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미술 고유 언어인 점, 선, 면, 색채만으로 독자적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회화 구성 원리를 만들었다. 자연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통해 진짜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그것은 사물을 한쪽에서만 봐서는 본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정면, 측면, 윗면, 아랫면, 뒷면을 모두 표현해야만 사물의 본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세잔의 독창적 회화가 나온 이후, 서양 회화는 3천년 이상 지켜온 현실 세계 재현의 원칙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대미술은 무한한 생각의 영토를 가질 수 있었다.

생트 빅투아르산 La Montagne Sainte-Victoire 폴 세잔(1839~1906), 1904년경, 캔버스에 유채, 73.0x91.0㎝,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출처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이런 생각을 실험하기에 더없이 좋은 모델이 바로 생트 빅투아르산이었다. 이 작품은 연작중 하나다. 힘찬 산의 모습이나 아기자기한 숲속 마을의 조화에 초점을 맞춘 풍경이 아니다. 풍경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가지고 화면 구성을 하고 있다. 가장 먼저 레고 블록을 조립한 듯 딱딱한 붓질이 눈에 띈다. 자연을 구성하는 본질적 형태가 큐빅(세잔은 자연을 원통, 원뿔, 구로 보았다)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다. 서양 회화 공간 표현의 전통 방식인 원근법도 무시했다. 하늘과 산을 거의 같은 색조와 붓질을 통해 평면화시켰고, 산은 윤곽선으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세잔은 회화란 색채와 붓질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이 작품은 회화라는 독자적 공간을 위해 현실의 풍경을 빌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년 작에 속하는 이 그림은 후에 피카소 등의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입체파 탄생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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