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읽어드립니다 - 소장품
조선의 공간·시간·인간을
한눈에 보는 전국지도
<해좌전도>
글. 장상훈 국립진주박물관장
해좌전도 海左全圖 조선 19세기 중반 (1857~1859), 종이에 목판 인쇄 후 채색, 97.8×55.4cm, M 122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 놀라운 기획으로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았던 지도가 있다. <해좌전도 海左全圖>다. 1850년대 생이지만 아직도 많은 수가 살아남아 웬만한 박물관에 한 장 정도는 소장되어 있다.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기 때문이다. 국토라는 공간에 대한 지식은 무엇인가. 아니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공간에 대한 지식은 지형지물의 물리적 위치를 파악하는 데서 그쳐도 되는가. 아니다. 그곳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절절한 사연이 빠져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들이 삶의 고장을 일구어 온 사연이 담겨야 제대로 된 공간의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조선의 지도는 인간을 담고 시간을 담는다. <해좌전도>를 제작한 이가 그리 생각했고, 그에게 지도 제작을 가르친 선생도 그러했다. 그들은 지도는 공간뿐 아니라 그 공간을 일군 사람들의 면면과 함께 그들의 역사를 담아야 한다고 믿었다. 조선의 지도들이, 또 해좌전도가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까닭이다. 큰 인기를 누린 이 지도는 세 종류나 되는 판본이 제작되었고, 인쇄본을 똑같이 베껴 그린 필사본 지도도 다수 남아 있다. 이 지도를 받아 든 독자는 먼저 국토의 윤곽을 살피면서 자신과 그의 조상이 뿌리내려 살아온 소중한 국토가 세상 어디쯤에 있는지도 가늠하게 된다. ‘해좌전도’라는 지도 이름 속의 ‘해좌’가 중국 동쪽에 있는 조선의 위치를 염두에 둔 이름이다.

지도의 윤곽과 내용은 18세기의 위대한 지도 제작자 정상기鄭尙驥(1678~1752)의 <동국지도東國地圖>에 바탕을 둔 것이다. 풍수지리 관념을 바탕으로 국토의 중요한 산줄기와 물줄기를 상세하게 묘사했다. 또한 그 위에 팔도의 모든 고을, 역원驛院, 병영兵營, 진보鎭堡 등 행정, 교통, 군사 거점을 기록해서 국토의 전모와 국가의 운영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국토의 생김새를 지도로 시각화해서 지식인 사이에 널리 보급하는 것은 공동체 의식의 성장에도 기여했을 것이다.

나라의 중심인 한성을 중심으로 편제된 8도의 지방 통치 구역이 한눈에 분명하게 들어오고, 그에 소속된 330여 개 고을의 위치도 알기 쉽다. ‘경京’으로 표시한 한성에서 전국 각 지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망을 실선으로 그려서 중앙과 지방을 잇는 교통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마찬가지로 각 고을의 지명을 도별道別로 다른 색깔로 표시해서 구분하고 그 경계도 점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지도의 여백에 빼곡하게 수록한 설명문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이름난 산, 그리고 섬에 대한 것이다. 지도의 상단 왼쪽 여백에, 짧지만 명료하게 이 땅의 역사가 단군 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제시한다. 이후 고려왕조까지 역대 왕조의 행정구역 정보도 간략히 실었다. 이로써 이 지도가 국토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해를 함께 도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명문의 대부분은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구월산, 속리산, 가야산, 지리산 등 전국 팔도에 있는 20여 개의 명산과 제주도, 울릉도, 흑산도, 덕적도 등 큰 섬에 대한 것이다. 특히 강원도 금강산의 이름난 사찰을 비롯해서 설악산, 오대산, 총석정, 경포대, 죽서루 등이 열거된 점은 이러한 장소들이 유람이나 탐승과 관련해서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① 단군조선부터 고려까지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를 나열하고, 신라의 9주州와 고려의 8도道에 속하는 고을의 수를 정리해 두었다. 고려의 수도 개경의 직할 지역인 직예直隸에, 5도道와 양계兩界를 더해 고려의 지방 행정 구역을 8도로 간주한 점이 흥미롭다. 이와 같은 기록이 지도에 수록된 것은 한국의 전통 지도에 공간에 더해 시간을 함께 담는 역사지도의 성격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② 우리나라 산줄기의 흐름을 총 정리한 <산경표山經表>(18세기)는 집안의 계보를 정리한 족보를 그대로 닮았다. 이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백두산은 마치 한 집안의 시조처럼 우리나라 산줄기의 출발점으로 인식되었다. 천지天池와 함께 백두산의 모습을 강조한 것은 이 지도만의 특색이 아닐 만큼, 대부분의 조선시대 지도는 백두산을 특별히 강조하여 묘사했다. 1712년 조선과 청나라가 경계를 정하고 백두산에 세운 정계비定界碑도 대부분의 전국지도에 수록된 중요 사항이었다. 이 지도의 여백에 정계비 비문의 전문全文이 수록된 점이 흥미롭다.

백두산은 머리가 서북쪽에서 일어나 큰 황무지로 바로 내려와 여기에 이르러 우뚝 솟았다. 그 높이가 몇 천, 몇 만 길인지 모른다. 산꼭대기에 사람의 숫구멍과 같은 못이 있는데, 둘레가 20, 30리 되고 물색이 검푸르러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4월에도 빙설이 쌓여 있어, 바라보면 드넓은 은빛 바다 같다. (중략) 그 북쪽이 몇 자 터져 물이 넘쳐 나와 폭포가 되는데, 흑룡강의 발원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3, 4리 내려와야 비로소 압록강의 발원지를 볼 수 있다.

③ 압록강, 한강 등 큰 강과 연안에 옅은 푸른색을 칠해서 목판본 지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도의 가독성을 높였다. 육상의 도로뿐만 아니라 제주도와 울릉도로 이어지는 물길을 표시한 점이 돋보인다. 강원도 울진에서 시작된 물길이 울릉도로 이어지는데, 그 옆에 작게 그린 ‘우산于山’이라는 이름의 섬이 오늘날의 독도獨島이다. 독도를 우리 지도에 수록한 것은 이미 15세기의 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부도附圖에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수록한 이래로 이어진 조선지도의 긴 전통이다.

④ 한강을 낀 도읍지 한성漢城을 ‘경京’으로 표시하고, 그 주위를 둘러싼 경기도에 속한 37개 고을의 지명을 빠짐없이 원형 테두리 안에 수록했다. 고을 이름과 함께 수록한 숫자는 한성까지의 거리를 나타낸 것이다. 예컨대 안성이라는 지명 옆의 ‘一○七’라는 기록은 한성에서 안성까지의 거리가 170리里라는 뜻이다. 함경도 회령會寧의 ‘一○七○八’은 1,780리를 뜻한다. 또한 교통 거점인 역驛과 군사 기지인 진鎭에 대한 정보도 상세하다. 예컨대 오늘날 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에는 진을 뜻하는 기호(□)와 함께 ‘영종永宗’이라는 지명이 적혀 있고, 양주의 평구역도 역驛을 나타내는 기호(○)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지도 위에 기록된 모든 정보는 지도 제작자가 세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택’된 것이다.

⑤ 이 지도에는 일본과의 교섭에 대한 정보가 비중 있게 수록되어 있다. 먼저 동래에서 쓰시마로 다시 일본으로 가는 물길을 표시하는가 하면, 쓰시마의 지리·역사 정보와 함께 조선과의 관계를 요약해 두었다. 또한 경상도 동래의 초량草梁에 있었던 왜관倭館을 설치한 이유와 그 역사를 정리해서 제시했다. 정유재란(1597) 당시 왜군이 울산을 공격한 이래의 전황을 상세히 기록한 점도 흥미롭다.

쓰시마는 수로로 400여 리다. (중략) 고려 말 우리나라에 온 도적이 모두 일본 서쪽 여러 섬과 이 섬의 왜구다. 본조 세종 때 대마도의 왜구가 변경을 침략하자, 이종무에게 명하여 9절제사를 거느리고 정벌하게 하여 크게 무찔렀다. 선조 임진년(1592) 일본이 쳐들어 왔을 때도 이 섬을 거쳐 왕래했다. 우리나라에 가장 가깝고 몹시 가난하여 해마다 쌀과 포를 액수를 정하여 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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