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의 방
색과 색 사이,
시간을 품은 빛을 말하다
글. 편집팀
손대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빛에 홀린 거죠.
까만 흑칠에 수놓은 자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천연색 빛.
처음엔 자개에서만 빛이 나는 줄 알았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옻칠이 가진 깊이 있고 부드러운 빛,
그리고 자개와 옻칠이 어우러져 나오는 빛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왜 나전칠기였는가?’ 하는 질문에 ‘빛’이라고 답한다. 소년 시절 우연히 근처 작업실에서 만들어둔 나전칠기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는 손대현 명장은 그날 이후로 여태 빛을 쫓아왔노라고 했다.
조개껍데기를 가공해 문양을 만드는 ‘나전螺鈿’과 기물에 옻칠을 한 공예품을 일컫는 ‘칠기漆器’를 더한 나전칠기는 약 서른 가지에 이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탄생한다. 손대현 명장은 나전칠기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 가운데서도 ‘밑작업’ 단계에 가장 정성을 쏟는다. “백골白骨(원목 상태의 가구)에 생옻칠을 입힌 다음 베헝겁을 바르고 그 위에 토회(흙과 옻을 섞은 것)를 바르기를 반복하면서 면을 고르게 하여 초칠하기까지 과정을 말합니다. 밑작업은 작품이 완성되면 그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처리해버리면 작품이 오래 가질 못해요.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밑작업의 진가가 드러나는 거죠.”
“나전칠기는 세계 최고의 전통공예 기술입니다.” 힘주어 말하는 손대현 명장의 눈빛에 흔들림이 없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장인의 혼이 만나 완성되는 나전칠기는 그야말로 섬세함과 세밀함이 극에 달한 작품으로, 천 년 전 우리 선조들이 이러한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란다. “고려시대의 염주합念珠盒과 경함經函(경전 등을 담는 함)은 볼수록 경이로워요. 당대의 작품들은 나전으로 장식한 칠기의 출발점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죠. 정교하면서도 전체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장인들의 놀라운 감각과 인내를 짐작하게끔 합니다.”

나전칠기가 만들어지는 작업실이 갖추어야 할 특별한 요건에는 무엇이 있나요?
작업실에서 특히 선생님께서 신경을 쓰시는 공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옻칠의 가장 큰 특징은 실온 건조가 안 되고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마르기 때문에 옻칠 건조장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곳의 관리에 따라 칠의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청결과 온도, 습도 유지에 계속 신경을 써야 합니다.”
조선 나전칠기 마지막 장인이었던 1대 수곡守谷 전성규 선생과 그 뒤를 이은 2대 수곡 민종태 선생, 그리고 3대 수곡이 바로 손대현 명장이다. 대를 이어받은 ‘수곡’이라는 호號는 ‘골짜기를 지킨다’는 뜻으로, 전통공예인 나전칠기의 명맥을 이어가겠다는 계승 정신을 갖고 있다.
“요즘 다뤄지는 나전칠기는 시작과 끝만 있지, 중간이 없어요.” 손 명장은 나전칠기가 대중에 소개되는 모습에 아쉬움이 크다. 유물에 담긴 유구한 역사와 뛰어난 기술을 조명하고, 오늘날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작품의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옛것과 새것 사이 그 둘을 잇는 시간에 대해 다루는 바는 거의 없었다고.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전칠기는 부흥기와 쇠퇴기를 모두 겪었습니다. 우리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활동했던 선대 스승님들과 장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통은 과거에서 현대로 훌쩍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 ‘지켜져 온’ 것이죠.”
그가 줄곧 말하는 빛이란 단지 표면의 반짝임이 아니라, 기억을 새겨 넣은 시간이다. 현재 우리 시간대의 나전칠기에는 옛것과 새것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둘은 분명 서로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는 옛것이 새것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지켜봐온 사람이다. 기억하는 사람, 전하려는 사람, 계속 어루만지는 사람.
“지켜왔다”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본다. 빛이 달려온 거리를, 우리 눈에 닿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수년 전부터는 건칠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건칠 작업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작년에 건칠 작품으로만 개인전을 열기도 했고요. 전통을 베이스로 한 작업도 놓치지 않겠지만 틀을 깨고 확장하는 창의적인 작품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나전칠기에 대한 많은 애정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