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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삶의 풍경
<도카이도 53 역참[東海道五拾三次]>
글. 정미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3-1868] 막부의 거점인 에도[江戶, 현재의 도쿄]와 궁정(宮廷)이 자리한 교[京, 현재의 교토]를 잇는 도로였던 ‘도카이도[東海道]’는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이 북적였던 길이었다. 수백 명에 이르는 다이묘[大名, 지방을 다스리는 무사 계급 영주] 행렬은 에도와 지방 영지를 오갈 때 도카이도를 이용했다. 에도 막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관리와 공문서를 전달하는 파발꾼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도카이도에 설치된 53개의 역참에서 말을 바꿔 타며 길을 내달렸다. 전국 각지의 영험한 산이나 사찰, 신사로 향하는 순례자들과 비파 연주·노래 등의 재주를 부리며 전국을 떠돌아다녔던 예능인들도 도카이도 위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도1. 신간 『세계문화 깊이 보기 〈도카이도 53 역참〉』 ISBN 9788993518955 186x230mm, 215p 25,000원 국립중앙박물관 발행

19세기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다색판화]를 대표하는 화가였던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는 이러한 도카이도 위 삶의 풍경을 55장의 다색판화 시리즈로 제작하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일본실에서 상시 전시 중인 ‘호에이도판[保永堂版] 〈도카이도 53 역참[東海道五拾三次]〉’은 히로시게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 바로 그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세계문화관 전시품에 대한 관람객의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이번에 '호에이도판 〈도카이도 53 역참〉 55장 전체의 고화질 도판과 해설을 수록한 신간 『세계문화 깊이 보기 〈도카이도 53역참〉』을 선보인다.도1

도2. 짐을 인계하고 교대하는 인부들과 관리자들 제22역참 후지에다(藤枝), 우타가와 히로시게, 에도 시대 19세기, 다색판화, 24.0x36.4㎝, 구2897
도3. 아침 일찍 혼진에서 출발할 준비를 하는 다이묘 일행 제47역참 세키(關), 우타가와 히로시게, 에도 시대 19세기, 다색판화, 24.0x36.4㎝, 구2918

도카이도가 본격적으로 정비된 것은 에도 시대 17세기 초였다. 에도 막부는 도카이도에 53개의 역참을 설치하여 사람과 물자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자 했다.도2 막부의 참근교대参勤交代 정책에 따라 2년에 한 번씩 지방 영지와 에도를 정기적으로 오가야 했던 다이묘들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위해 역참별로 설치된 공식 숙소인 ‘혼진[本陣]’에서 묵었다.도3 수백 명으로 구성된 다이묘의 참근교대 행렬이 도카이도를 지나가는 모습은 에도 시대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수백 명 규모로 도카이도를 지나간 또 다른 행렬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였다. 통신사들은 도카이도를 따라 교토에서 에도를 오가며 각 지방을 통치하는 다이묘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으며 비교적 안락한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때로는 도카이도에 적용되는 막부의 엄격한 정책과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고난을 겪기도 했다.

도4. 오이가와(大井川)를 건너는 다이묘 일행 제23역참 시마다(嶋田), 우타가와 히로시게, 에도 시대 19세기, 다색판화, 24.0x36.4㎝, 구2912

1748년 도쿠가와 이에시게[徳川家重, 1712-1761]의 에도 막부 제9대 쇼군[將軍]직 계승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통신사의 종사관이었던 조명채[曺命采, 1700-1764] 역시 자신의 사행록인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에서 그러한 경험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쇼군에게 전달할 조선의 국서를 수행하여 에도로 향하던 조명채는 1748년 5월 13일 도카이도 굴지의 난관이었던 오이가와[大井川]에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도4

이른 아침에 대마도주가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고 말 전하기를, “앞길에 오이가와[大井川]이 있는데, 초여드렛날 큰비 뒤에 먼 데 물이 비로소 내려와 이제 한 길이 넘는다.’하니, 형세가 여기 머물러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한다.01

01 “早朝。馬守送人問候。且言前路有大井川。監守者專人來報。 以爲初八日大雨後。遠水始至。今過丈餘云。勢將留此以待水退矣。”, 『奉使日本時聞見錄』, 「十三日丙申」 ⓒ 한국고전번역원, 이정섭·정연탁(공역), 1977.

오이가와은 수량이 많은 데다 유속이 빨라 매우 건너기 힘든 강으로 유명했지만, 막부는 에도의 방어를 구실로 이 강에 다리는커녕 배를 이용하여 건너는 것도 금지했다. 이 때문에 오이가와을 건너기 위해서는 말을 타거나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고, 때를 잘못 만나 오이가와의 강물이 불어나기라도 하면 강을 건너지 못하고 며칠이고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불행히도 조명채 역시 그러한 상황 아래 놓였던 것이다. 불어난 강물은 이튿날에도 조명채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 역참의 부교[奉行]들이 역관을 와 보고 말하기를, “동남풍이 잇따라 불어서 후지산[富士山]의 언 눈이 비로소 풀리고 아울러 비로 물이 불어서, 건너기가 아직은 쉽지 않습니다.”하더라 하니, 대마도주가 어제 한 말을 비로소 믿겠다.02

02 “本站奉行輩來見譯官。以爲東南風連吹。而富士山氷雪始解。兼以雨漲。 渡涉姑未易云。始信馬守昨日之言矣。”, 『奉使日本時聞見錄』, 「十四日丁酉」 ⓒ 한국고전번역원, 이정섭·정연탁(공역), 1977.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따뜻한 봄바람으로 인해 후지산의 눈이 녹고 비까지 내려 강물이 불었으니 아직도 오이가와을 건널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갈 길이 먼 통신사 일행에게는 정말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튿날인 15일 다행히 조명채는 오이가와을 건널 수 있었다.

계명鷄鳴 뒤에 대마도주가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고 말을 전하기를, “오이가와의 물이 줄어서 이제 건널 만하니, 꼭 인시寅時(오전 4시경)에 일찍이 떠나야 하겠습니다.”하므로, 곧 일어나 망궐례望闕禮를 행하고 조반을 서둘러 먹고서 떠나니, 해가 벌써 떠올랐다.03

03 “鷄鳴後。馬守送人問安。且言井川水退。方可過涉。而必於寅時早發云。 故卽起行望闕禮。促飯仍發。日已上矣。”, 『奉使日本時聞見錄』, 「十五日戊戌」 ⓒ 한국고전번역원, 이정섭·정연탁(공역), 1977.

이렇듯 조명채를 곤란하게 했던 오이가와는 〈도카이도 53 역참〉에서 유일하게 두 번 묘사되었다. '오이가와 건너기'가 도카이도 여행길에서 얼마나 어렵고도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다.

도5. 어깨에 물건을 짊어지고 달리는 파발꾼 제7역참 히라쓰카(平塚), 우타가와 히로시게, 에도 시대 19세기, 다색판화, 24.0x36.4㎝, 구2921

막부는 도카이도 53개 역참 인근 토지의 세금을 면제해 주는 대신, 공무로 도카이도를 여행하는 자들에게 역참이 말과 인부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역참에서는 ‘히캬쿠[飛脚]’라 불리는 파발꾼 제도도 정비되었다. 파발꾼들은 역참에 구비된 말을 이용하거나 직접 달려서 편지나 서류, 작은 화물을 운송했고, 심지어 현금까지 전달했다.도5 에도 시대 중기가 되면 민간 파발꾼 제도가 활성화되는데, 운송을 보장하는 기간별로 요금이 달랐다. 당연하지만 가장 일찍 도착하는 파발의 요금이 제일 비쌌다.
이 시기에는 공무 여행 이외에도 개인 여행이 활발해졌다. 전국 각지의 영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순례 여행이 붐을 이루었고 서민들도 여행을 즐기게 되면서 이들이 묵는 숙소가 위치한 도카이도의 역참들이 경제적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도6 특히 여관들 사이에 손님을 끌어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경쟁이 오죽 치열했으면, 손님의 목이 졸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소매와 옷깃을 잡아당기는 것은 예삿일이었다.도7 여관에 ‘메시모리온나[飯盛女]’라고 불리는 유녀遊女를 고용하는 여관들도 늘어났다. 막부는 원칙적으로 역참에 유녀를 두는 것을 금지했지만 현실적으로 효과가 없자 결국 1718년 여관 한 곳 당 두 명의 메시모리온나 고용을 허가해 주었다.

  • 도6. 덴구(天狗) 가면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곤피라다이곤겐 순례자 제12역참 누마즈(沼津), 우타가와 히로시게, 에도 시대 19세기, 다색판화, 24.0x36.4㎝, 구2907
  • 도7. 손님을 붙잡는 여자 제35역참 고유(御油), 우타가와 히로시게, 에도 시대 19세기, 다색판화, 24.0x36.4㎝, 구2935

신간 『세계문화 깊이 보기 〈도카이도 53 역참〉』은 이와 같이 도카이도 길 위에서 삶을 꾸려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55장의 우키요에를 소개한다. 각 장면별 고화질 도판과 자세한 해설뿐만이 아니라 조선통신사가 사행록에 남긴 각 역참에 대한 기록과 다이쇼[大正, 1912-1926] 시대 실제 역참의 풍경을 찍은 흑백사진을 함께 소개하여 히로시게의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우키요에의 제작 과정과 우키요에 속 글씨와 인장을 ‘읽는 법’에 대한 칼럼도 풍부하게 실었다. 에도 시대 도카이도의 풍경을 만끽하고 싶었거나 일본실에서 전시 중인 〈도카이도 53 역참〉에 대해 평소 궁금한 점이 많았던 관람객이라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한 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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