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톺아보기
인간이 만들어 낸
한국 호랑이
글. 노정연 일러스트레이터
삶과 예술에 스며든 호랑이 이야기

2022년 임인년壬寅年이 밝았다. 올해의 상징인 산중호걸山中豪傑 호랑이의 힘을 빌어 모두 다 마스크를 벗고 호랑이 기운으로 힘차게 일어서고 싶은 한 해이다. 호랑이는 우리에게 단군신화부터 등장하였고, 중요한 행사 때마다 ‘호돌이’와 ‘수호랑’으로 변하여 마스코트 역할을 해주었으며, 대한민국 지도 위에서 포효하고 있어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로 일컬어진다. 물론 호랑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징적 동물로 인기가 있다.

맹호도 猛虎圖 맹호도 猛虎圖 조선 18세기, 종이에 수묵, 96X55.1cm, M67

이러한 기상의 호랑이 이미지는 옛 선조들의 작품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선사시대 벽화에서부터 회화와 민화뿐만 아니라 호랑이의 가죽과 뼈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공예품들까지 실로 그 상징에 담긴 깊은 염원을 엿볼 수 있다. 예부터 산이 많아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최적이었던 우리나라는 산만한 덩치로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의 민가 출몰이 잦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호랑이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전래동화, 설화, 민화, 우화 등이 사람의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져 무섭지만, 신령스럽고 은혜를 갚을 줄 알며 어수룩한 호랑이의 다양한 이미지가 탄생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이미지들을 판화로 만들어 벽사용 부적으로 소장하거나 직접 그려 세화나 민화로 집안과 밖에 걸어놓았다.

호작도 虎鵲圖 호작도 虎鵲圖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134.6X80.6cm, 동원2613

이같이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했던 호랑이는 1922년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로 ‘백두산 호랑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6종의 아종과 3종의 멸종종 중 하나다. 그러니 호랑이를 상징으로 내세우는 각 나라에 서식하는 호랑이는 모두 다른 종류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우리 호랑이’에 관련된 뉴스가 최근 계속되었다. 국내 한 동물원에서 멸종위기 1급의 한국 호랑이가 자연 번식으로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호랑이의 부모 또한 중국의 종 보전 프로그램을 통해 데려온 것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시베리아 호랑이’ 혈통의 호랑이가 태어난 것이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호랑이는 아니다.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것은 우리에게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살아있는 호랑이는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지만, 현대 디자인을 통해 우리 삶에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호랑이는 우리의 의식주를 아우르며 재탄생 된다. 패션, 식품, 제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상징이 되고 브랜딩의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의 〈Korean Tiger Series〉도 이러한 현대적 디자인 재해석 프로젝트로 작품의 주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한국 호랑이’다

백자청화송하호작문호, 18세기 후반 정조 시절 청화백자 그림 1

앞서 말했듯 우리 곁에 없는 우리 호랑이를 이제는 인위적인 방법으로만 접할 수 있다는 것과 현대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필자는 이 작품의 선행연구를 위해 들렀던 국립중앙박물관 답사에서 호랑이 관련 문화재들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
‘소나무 호랑이 까치무늬 항아리’01는 흰 도자기 위에 희보작호도喜報鵲虎圖를 그린 것으로 호랑이를 보고 겁에 질린 듯한 까치의 표정과 으르렁 대는 듯한 호랑이의 얼굴이 일품이다. 소나무의 묘사와 위아래에 둘러진 문양의 조화도 돋보인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에서 만난 호랑이는 한국 전통의 재해석이라면 이정도 스케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기준점을 제시해 주며 재해석 작품 창작에 대한 야망을 갖게 했다. 19세기 조선시대 ‘소나무 아래 호랑이’도 빈티지한 맛과 멋, 더불어 만화 캐릭터 같은 표정과 가죽 묘사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작품을 대표한다.

01 백자청화송하호작문호, 18세기 후반 정조 시절 청화백자
그림 2

앞으로도 호랑이에 대한 인간들의 관심은 계속될 것이며, 이는 우수한 디자인 작품으로 재해석되어 계속해서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의 바탕에는 과거 조상들이 만난 호랑이와 상상한 호랑이가 때로 위협적이거나 익살스러운 얼굴로 함께할 것이 분명하다. 출산호도出山虎圖의 호랑이는 ‘범 내려온다’는 음악으로, 텍스트로 우리와 함께 으르렁거리며 신명나게 들썩이지 않았는가. 호랑이 문화재들을 모티브로 현대에 재탄생하는 많은 호랑이 작품들의 염원이 그러하듯 2022년 한해, 필자의 한국 호랑이 〈Korean Tiger Series〉가 코로나19와 싸울 수 있는 힘찬 기운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림 3

Tip+

〈Korean Tiger Series〉는 우리 선조들의 호랑이 그림에서 시선을 끄는 호랑이와 매, 까치, 출산호도, 토끼 이미지를 빌려 정방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그림 1 ‘로봇 호랑이’는 현대인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계의 과부하를 상징한다. 벽사수호의 상징 ‘삼두일족응三頭一足鷹’02을 뜻하는 매 세 마리가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림 2 ‘호랑이 건물’은 조선 후기 출산호도出山虎圖의 차용 이미지로 까치, 소나무 줄기와 함께 배치된다. 이 호랑이는 ‘걸어 다니는 건물’이자 건물 소유의 염원, 호랑이를 이용한 사업으로 얻는 수익으로 해석된다. 기쁜 소식을 전해줘야 할 까치들은 가짜 호랑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림 3 ‘박제된 호랑이’는 수원 팔달사水原八達寺 벽화의 곰방대를 피우는 호랑이와 토끼를 차용한다. 호랑이에게 잡아먹지 말아 달라며 곰방대를 들고 아부하는듯한 토끼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호랑이의 몸과 다리에는 스티치가 있다. 이는 박제된 호랑이, 멸종위기 동물들의 가죽을 벗겨내 판매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이다. 사람의 만족을 위한 살생 행위는 동물과 인간의 바람직한 공존을 더이상 꿈꿀 수 없게 한다.

02 머리가 세 개고, 발이 하나인 매를 말한다. 흔히 삼두매라고도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숫자 3을 중시함으로, 머리가 세 개가 된 것은 그런 이유로 보인다. 삼재(三災)를 세 개의 머리로 쪼아 발긴다고 하여 조선 후기부터 그 그림을 액막이 부적으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노정연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2006년 도미하여 뉴욕의 School of Visual Arts 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까지 미국, 유럽, 아시아의 주요 신문, 잡지, 광고, 도서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요 클라이언트로는 The New York Times, The New Yorker, GQ, Newsweek, Billboard Magazine, Harvard Magazine, Facebook, YouTube, Ray-Ban 등 100여개가 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와 디자인 대학원 일러스트레이션 전공의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홍익대의 시각디자인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최근 선보인 〈Korean Tiger Series〉는 한국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작가만의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