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거리 두던 예술?
거리로 나온 예술!
글.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Z세대와 미디어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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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디어 아트는 예술 공간의 지평을 확장시켰다. 미술관과 전시장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던 것이 예술이었다면, 이제는 그 속으로 들어가거나 체험하는 것이 예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지점은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문화창고

힙지로, 예술 속을 걷는 MZ세대들

쭉쭉 뻗어 올라간 빌딩 숲들 사이에서 을지로는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지역이다. 각종 공업사와 철공소들이 밀집해 있고, 그래서인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건물들이 있다. 7·80년대였다면 퇴락된 곳으로 ‘도시 미화’라는 이름하에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을 법한 그런 곳이지만, 그 시대를 버텨낸 을지로는 이제 MZ세대들에게는 ‘힙지로(힙스터들의 성지 을지로)’로 불리는 곳이 됐다. 어딘가 아날로그의 냄새가 풍겨나고, 복고적 감성들이 묻어나는 곳. 그래서 시간의 흔적들은 퇴락의 의미가 아닌 빈티지 개념으로 살아나는 공간. 낡으면 밀어내던 재개발이 아닌, 이제 그 시간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되살리는 ‘도시재생’ 개념이 만든 곳이 바로 힙지로다.

지난 2019년에 열렸던 ‘을지 판타지아’는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페스티벌을 통해 ‘힙지로’의 존재감을 제대로 알렸던 전시였다.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만들어낸 영상, 사운드, 프로젝션 맵핑, 인터랙티브 아트 그리고 설치미술 등이 을지로의 골목들과 건물 외벽에 전시된 것.
낮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모습 그 자체이던 을지로는 밤이 되자 미디어 아트 작품들로 채워진 색다른 체험 공간으로 바뀌었다. 영상이 투사된 가게의 셔터는 스크린으로 변신했고, 건물 벽면은 예술작품이 설치되는 전시 월이 됐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녹색 조명이 설치되고 매미소리 사운드가 울려 퍼지자 그 공간은 아늑한 숲길 같은 판타지 공간이 되어 행인들을 발길을 잡아 끌었다. 레이저로 벽면에 투사된 댄서의 형상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콘서트와 댄스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그곳은 또한 페스티벌의 현장이기도 했다.

매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열리는 을지공공예술제는 이제 힙스터 MZ세대들이 찾는 축제가 됐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골목길이 미디어 아트에 의해 예술로 바뀌는 순간들을 ‘힙’한 것에 민감한 MZ세대들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다. 마치 예술 속으로 들어가듯 골목길을 따라 걷고, 곳곳에 설치된 미디어 아트들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이 놀라운 미디어 아트의 체험을 인증한 사진들을 SNS에 공유한다.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한 셀카지만 이것은 바로 이 미디어 아트를 완성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된 그 공간에 자신을 세워 찍어 공유하는 그런 사진들은 온라인으로 퍼져나가며 을지로라는 공간을 새롭게 의미화하기 때문이다. 을지로는 이렇게 해마다 미디어 아트의 도화지이자 전시장으로 공간을 내주면서 MZ세대들의 핫플레이스로 변신하고 있다.

거리로 나온 예술과 MZ세대의 소통욕망

미디어 아트는 사진이나 전화, 영화 같은 새로운 미디어 신기술들을 활용한 예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흔히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떠올리지만, 신 미디어들을 계속 수용하며 진화해왔다. ‘을지 판타지아’의 사례에서 읽어낼 수 있듯이 최근에는 보다 정교해진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활용해 실제와 가상을 오가는 ‘체험형 전시’로 확산되고 있다. 발산역에서 마곡역까지 이어진 강서구 마곡문화거리에서 펼쳐진 ‘미디어파사드, 예술을 꽃피우다’, ‘보도블록, 색의 향연에 빠지다’ 같은 미디어 아트 작품은 그 단적인 사례다.
예술이라고 하면 시간을 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가야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떠올려보면, 이 거리로 나온 예술은 모든 공간을 캔버스로 또 전시장으로 바꾼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단절된 시민의 일상을 위로하기 위해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펼쳐진 미디어파사드 공연 ‘상상초월’은 그곳의 거대한 석유저장 탱크를 스크린처럼 활용했다. 코로나 상황이 만든 집콕 생활이나 홈트레이닝 같은 일상들이 담겨진 영상들을 야외에 앉아 감상하는 젊은 관객들의 모습은 마치 야외영화관에 온 듯한 평화로운 시간을 만들었다.
관객과의 거리를 두던 예술과는 사뭇 다른 ‘거리로 나온 예술’은, 예술을 성역으로 여기고 멀찍이서 감상하기보다는 더욱 가까운 일상으로 경험하고픈 MZ세대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문화창고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소통 욕구’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수용하기보다는 자신 또한 메시지를 상호교환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상호작용과 쌍방향 소통이 중요한 미디어 아트는 MZ세대들에게는 ‘참여할 수 있는 예술’로서 매력적이다. 2020년 9월부터 작년 8월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진행된 ‘팀랩 라이프(teamLab : LIFE) 전시는 아름다운 색색의 디지털 이미지들 속으로 관객이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작품을 완성하는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했다. 전시를 찾은 관객들은 벽면에 투사된 나비 떼들과 꽃으로 만들어진 동물의 형상들, 거대한 파도와 해바라기 군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에 익숙한 MZ세대

MZ세대들이 특히 미디어 아트에 관심이 높은 건,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터넷과 모바일 라이프가 익숙한 이 세대들에게 가상현실, 증강현실 경험은 그리 낯선 게 아니다. 게임 같은 가상공간의 인터페이스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정적인 스틸컷으로서의 사진만이 아닌 영상에 더 익숙해진 이들은 미디어 아트가 제공하는 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체험들이 더 실감 나게 느껴진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도 소개되어 화제가 됐던 디스트릭트(d’strict)의 ‘웨이브(Wave)’ 프로젝트 같은 미디어 아트는 마치 파도가 몰아치는 다이내믹한 장면으로 삼성동 코엑스 광장을 지나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도시 한 복판에서 마주하게 되는 진짜 같은 파도의 형상은 이러한 가상에 익숙한 현세대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뉴욕에서도 시도됐던 ‘웨일(Whale)’이나 ‘폭포(Water fall)’ 같은 프로젝트처럼, 이 미디어 아트는 일종의 광고로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예술과 상업광고의 경계를 깨버리는 미디어 아트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건 작품이면서 상품이지만, 명품이 식상해져 예술로 눈길을 돌리며 아트테크에도 열광하는 MZ세대들에게 이런 구분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미디어 아트는 때론 미술 교과서에 박제되어 있던 고전들조차 현재로 소환해 되살려놓는다는 점에서 ‘트렌디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d'strict

백남준을 잇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불리는 이이남이 겸재 정선의 ‘양천팔경첩’ 사계와 더불어 과거 배수펌프장이었던 마곡 문화관의 역사를 재해석한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은 단적인 사례다(서울식물원 마곡문화관에서 4월17일까지 전시). 정적이고 평면적인 동양화로 여겨졌던 겸재의 산수를 사계의 흐름에 따라 색깔이 바뀌고 눈발이 흩날리는 동적인 세계로 되살려낸 이 작품은, MZ세대들에게 익숙한 미디어 감각으로 재해석된 고전들이라는 점에서 익숙하면서도 유니크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최근 MZ세대들의 미디어 아트에 대한 열광이 이른바 ‘인스타 인생샷’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체험형 전시’나 마케팅으로도 활용되는 ‘전시’ 같은 속성들에 담긴 상업적 속성을 저어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의 속성을 타고 들어가 보면 그러한 SNS를 통한 관객의 참여 자체가 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예술을 성전처럼 떠받들며 엄숙하게 감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관객 위에 군림하며 거리를 두던 예술이 이제 거리로 나와 관객과 함께 만들어지는 시대. 이것이 MZ세대들이 미디어 아트를 통해 예술을 소비하는 현재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