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읽어드립니다 - 소장품
조선의 법전 해설서
『경국대전주해 經國大典註解 』
글. 허문행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
“법이 만들어져 법전을 편찬하고, 법전을 풀이하는 것은 실로
시대변화의 마땅함에 연유한 것이다”
『경국대전주해』 전집, 서문

각국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법法과 법의 내용을 성문화한 법전法典 이 존재한다. 법전 해석은 개인 또는 집단의 권리와 미래를 결정할 수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유교 국가로 알려진 조선왕조에서도 15세기 후반 편찬된 국가의 기본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 』의 해석을 놓고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법전의 주요 내용을 해설한 『경국대전주해』(이하 본문에서는 『주해』)가 편찬되었다.

『경국대전주해』의 편찬 배경

조선왕조의 법전 편찬은 건국 초부터 시작되었다. 세조世祖(재위 1455-1468) 대 이르러 법전의 이름이 ‘나라를 경영하는 큰 법전’이라는 뜻의 『경국대전』으로 정해졌으며, 법전의 내용을 보완하고 교감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01 『경국대전』은 성종成宗(재위 1469-1494)의 명으로 1485년 (성종16) 1월 1일부터 조선왕조의 공식 법전으로 준용되기 시작했다.02,도1 그러나 『경국대전』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 많아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도 혼동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주석을 달아 뜻을 쉽게 풀이하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으며,03 명종明宗(재위 1545-1567) 대 이르러 법전의 주해서註解書 편찬이 추진되었다.

01 『세조실록』 권21, 세조 6년(1460) 7월 17일 신묘 辛卯 .
02 『성종실록』 권173, 성종 15년(1484) 12월 4일 정사 丁巳 .
03 『성종실록』 권133, 성종 12년(1481) 9월 17일 무자 戊子 ; 『명종실록』 권11, 명종 6년(1551) 3월 16일 갑진 甲辰 .
04 한국법제연구원, 『역주 경국대전주해』(2009), pp.15-16 및 p.30.
05 충청도 청주, 은진(지금의 논산시), 유신(지금의 충주시), 부여, 회덕(지금의 대전광역시), 예산, 옥천, 홍주(지금의 홍성군), 단양, 진잠(지금의 대전광역시), 청풍(지금의 제천시), 니산(지금의 논산시), 서천.
도1 『경국대전』 『經國大典』 조선 1476년 초간, 1661년 재간행 32.5×21.5㎝, 구 2647

『경국대전주해』의 편찬 과정과 구성

1550년 (명종 5) 명종은 예조禮曹에 명하여 『경국대전』의 주해를 위한 관청을 두도록 했다. 통례원 좌통례 안위安瑋(1498-1563)와 봉상시 정민전閔荃(1499-미상) 이 일차적으로 대상 조문을 선별 및 주해했고, 예조판서 정사룡鄭士龍(1491-1570) 등이 교열하여 초고를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경국대전』의 해석과 직결되는 것은 의정부 정승들이 검토한 후 임금의 재가를 받아 1555년(명종 10) 봄에 간행되었는데 이를 ‘전집前集’이라 한다.
같은 해 법전의 용어를 해설한 부분도 충청도 관찰사로 재직 중이던 안위가 청주목淸州牧에서 간행하였는데, 이를 ‘후집後集 ’이라 한다.
전집은 『경국대전』의 조문 가운데 해석이 나뉠 수 있는 조항에 대한 해설서로 육전六典(이·호·예·병·형·공전) 중에서 78개 조문에 대한 주석을 덧붙였다. 후집은 법전에 수록된 832개의 용어를 풀이한 책으로, 훗날 관리들이 법을 집행할 때 활용되었다.04,도2

〈표 1〉 『경국대전』 전집과 후집의 비교

  전집 후집
편찬연도 1554년 봄 1554년 가을
성격 『경국대전』의 조문 가운데
해석이 나뉠 수 있는 조항에 대한 해설서
법전에 수록된
용어에 대한 해설서
구성 육전의 30개 항목 중
78개 조항에 대한 주석 추가
육전의 189개 항목 중
832개의 난해한 용어 해설
특징 임금의 재가를 받아 간행 임금의 재가를 받지는 않았으나,
안위가 조정의 명으로 1555년 1월 청주목에서 간행
도2 『경국대전주해』 『經國大典註解』 조선 1554년 21.7×20.2㎝, 구 9528

『경국대전주해』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해』는 전·후집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책으로 후집의 마지막 부분에 “갑인년(1554) 가을 청주목에서 간행했다”는 간기刊記가 있어 간행 연대와 지역을 알 수 있다. 간기에 따르면 『주해』 후집은 업무의 총괄을 맡은 충청도 관찰사 안위를 중심으로, 21명이 참여하여 간행되었다. 이때 도내 13개 고을05에서 인력이 동원되었는데 지방 관아에서 법 관련 실무를 맡은 율생律生, 기록을 담당한 기관 記官 은물론 승려[僧人]들도 『주해』 편찬에 참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도3

도3 『경국대전주해』 후집의 간기 중, 승려들의 명단

『경국대전주해』의 편찬 의의

『주해』는 조선시대 기본 법전 『경국대전』의 난해한 구절을 해설하기 위해 발간된 유일한 법전 해설서이다. 편찬 이후 활발하게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경국대전』을 증보한 법전 『속대전 續大典』과 『대전통편大典通編』에도 그 내용이 포함되었다. 『주해』는 단순히 법 조항을 해설한 책이 아니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당시 조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법 지식을 포함된 것은 물론, 관리들의 법에 대한 이해를 높여 그 혜택이 백성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영향을 준 책이었다.

『경국대전주해』의 용례 살펴보기

서명 사례
경국대전 해마다 봄의 첫 달에 의정부·6조의 당상관 및 사헌부·사간원의 관원은 각기 관찰사나 절도사*를 감당할만한 자를 천거하고···
군자감·풍저창·광흥창은 각각 다른 관아에 빌려준 쌀과 콩을 ‘번고反庫*’하여 인계한다.
전집 ‘절도사’는 병마, 수군의 통칭이다. 비록 수군절도사라고 하여도 천거가 없으면 임금께 추천할 수 없다.
후집 ‘번反’은 뒤집는 것이니, 즉 살피는 것이다. 창고 속의 물건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 『경국대전주해』는 상설전시관 1층 조선실(117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