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박물관
우리 일상에
문화와 예술이 스며들다
글. 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2022. 4. 28. ~ 8. 28.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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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맛비가 갠 후 인왕산은 사뭇 다르다.
장맛비로 바위들은 물기를 머금어 묵직해 보이고 수성동과 청풍계에 폭포가 생겨났다.
계곡을 따라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촉촉하고 청신한 여름날의 정감을 드러낸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난 겸재 정선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인왕산을 늘 보고 자랐다.
일흔여섯의 노대가 정선은 자신의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인왕산 구석구석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내 최고의 역작을 남겼다.

2021년 4월 28일 고故 이건희李健熙(1942-2020) 회장 유족은 그의 수집품 중 문화유산 9,797건 2만 1,6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근현대 미술품 1,226건 1,488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근현대 미술품 102점을 지역 미술관인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에 나누어 기증했다. 유례없는 ‘세기의 기증’에 쏟아진 폭발적인 관심에 부응하여, 그해 7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21. 7. 21. ~ 9. 25.)을,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21. 7. 21. ~ 22. 6. 6.)을 신속히 준비하여 각각 77점과 57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2022년 4월 28일 기증 1주년을 맞이하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4. 28. ~ 8. 28.)을 마련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 대표작인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도1와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등 249건 308점과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대표작인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7〉과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도2 등 34건 35점, 지역 미술관 기증품인 박수근의 〈한일(閑日)〉도3 등 12건 12점 포함 총 295건 355점의 이건희 회장 기증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특별전이다.

도1.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정선(1676-1759), 조선 1751년, 종이에 먹, 79.2×138.0㎝, 국보, 국립중앙박물관(전시기간 2022. 4.28. ~ 5.31.)
도2. 수련이 있는 연못 The Water-Lily Pond 클로드 모네(1840-1926), 1917-1920년, 캔버스에 유채, 100.0×200.5㎝, 국립현대미술관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과 작품 주변의 미디어아트
도3. 한일閑日 박수근(1914-1965),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33.0×53.0㎝, 박수근미술관 ⓒ 박수근연구소

전시를 기획할 때 첫 번째 화두는 ‘이건희 회장 기증품을 향한 국민의 관심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의 수집품은 일찍부터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에서 활용되었고 국내외 여러 기관 특별전에 출품되었는데도 여전히 ‘비장祕藏의 수집품’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희 수집품을 향한 세간의 이해에 착안해서 수집품을 모아놓은 ‘수집가의 집’이라는 개념으로 전시 준비를 해나갔다.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두루 사랑하는 ‘어느 수집가’를 설정하고 그의 수집품으로 꾸민 가상의 공간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첫 번째 전시실을 준비했다.
두 번째 화두는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문화유산과 미술품은 결국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발명하거나 자연에서 받은 예술적 감흥을 표현한 물건이다. ‘어느 수집가’는 이런 물건의 가치에 일찌감치 눈 떴고, 전시기와 분야에 걸쳐 다양한 물건을 수집했다. 그래서 그가 수집한 물품의 성격을 보여주고, 수집품에 담긴 인류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달되도록 두 번째 전시실을 꾸몄다. 이러한 기획 의도를 반영하여 전시실을 제1실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와 제2실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로 구성했다.

제1실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 전경
제1실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 전경
제2실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전시 전경
제2실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 1부 전경
제2실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 2부 전경

제1실은 ‘어느 수집가’의 안목과 취향이 반영된 수집품을 즐기는 공간이다. 손님을 맞이할 수집가를 대신하여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한 근현대 회화와 조각품을 전시했다. 이어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소반, 백자 주자와 잔을 배치하고, 아모레퍼시픽의 후원으로 은은한 차향이 감돌도록 연출했다. 또한 가족의 추억을 담은 글과 그림으로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전하며, 나란히 놓인 〈백자 달항아리〉도4와 김환기의 〈작품〉도5으로 자연과 예술을 사랑한 ‘어느 수집가’의 안목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시대 수집 열망을 대변하는 19세기 〈책가도 병풍〉과 함께 책장형 진열장에 여러 수집품을 배치하여 수집가의 수집 취향을 전한다. 특별히 정원과 같은 공간 두 곳을 만들어 제주 동자석과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각각 두었다. 모네 작품 주변에 수련이 있는 연못 영상을 투사하여 연못이 있는 정원에 관람객이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다.
제2실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는 수집품에 담긴 인류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공간이다. 모두 네 영역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영역인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에서는 조선시대 산수화와 도자기, 현대 회화를 함께 전시하여, 인간이 자연에서 영감을 받거나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식을 제시한다.

  • 도4. 백자 달항아리 白磁 壺 조선 18세기 높이 34.3cm, 최대폭 32.8㎝, 국립중앙박물관
  • 도5. 작품 Work 김환기(1913-1974) 1950년대, 하드보드에 유채 54.0×26.0㎝, 광주시립미술관

‘봄·여름·가을·겨울’ 공간에서는 달마다 전시품을 교체하여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감성에 주목했다. 먼저 개막 후 5월 31일까지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전시하여 비 갠 여름날의 청신함을 전달한다.
6월 1일부터 30일까지 김홍도의 〈추성부도〉를 전시하여 가을의 고독함을, 7월 1일부터 28일까지 박대성의 〈불국설경〉으로 겨울의 고요함을, 마지막으로 7월 29일부터 8월 28일까지 남계우와 이경승의 〈나비〉 그림으로 봄의 화사함을 전한다. 이처럼 〈인왕제색도〉와 〈추성부도〉를 한 달씩 전시하는 이유는 이 두 작품을 금년 하반기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내년 상하반기에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전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영역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에서는 인간이 자연에서 얻은 기본 소재인 흙과 금속의 성질을 이용하여 만든 토기와 도자기, 금속 공예품을 전시한다. 세 번째 영역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에서는 글과 그림 속에 불교 교리와 인간의 생각을 담아냈던 불교 미술품과 조선시대 서화의 세계로 관람객을 이끈다. 네 번째 영역 ‘인간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험’에서는 사회적 신념을 개인의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던 시대를 넘어 점차 개인의 주체적 생각과 감성이 인류 발전에서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생각의 경계를 넘었던 인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어서 ‘어느 수집가’인 이건희 회장의 문화사랑 정신과 수집 철학을 영상으로 전한다.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이 되는데 일조하겠다는 기증자의 사명감과 철학이 관람객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제2실 <고려시대 범종>과 미디어아트 전시 전경

함께 나누는 기증전 취지에 맞게 전시 기획에 여러 사람이 함께했다. 2021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담당자가 처음 만나 각 기관 기증품을 주제별로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구성안을 작성했다. 수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전시를 풍성하게 만들어갔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디자이너 이현숙은 ‘수집’과 ‘집’이라는 개념으로 전시 공간을 풀어갔다. 그리고 김영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 위원장의 탁월한 제안으로, 전시 제목이 ‘어느 수집가의 집’에서 ‘어느 수집가의 초대’로 정리되었다.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번 특별전을 향한 관심이 무척 뜨겁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한 번도 찾지 않던 사람들도 이 전시를 보고 싶어 한다.

힘든 일상을 바쁘게 살아내면서도 문화 예술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이 이번 기증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일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에 ‘한국적’인 정체성이 스며들 때 문화적인 경쟁력이 생긴다”라는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우리에게 문화 예술이 스며들어 삶이 더 풍요로워지길 기대한다.

제2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전경
제2실 백남준 <브람스>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