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톺아보기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디지털 인왕제색도
글. 최유미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장 디자인대학원장
디지털 기술 통한 다양한 시각적 확장

미디어 매체의 출현으로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시각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작업환경의 변화로 최근 들어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여 고서화나 유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겸재 정선鄭歚(1676-1759년 )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 화법을 완성한 화가이다. 그는 중국의 화보만을 보고 모방하여 그리던 관념적인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린 실경산수화를 그림으로써 독창적인 화풍을 창출한 도전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인왕제색도는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 인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산 아래에 나무와 숲, 자욱한 안개를 표현하고 위쪽 가득 인왕산 바위를 배치했다. 산 아래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산 위쪽은 멀리서 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 생생한 현장감을 주고 있다(국가문화유산 포털). 2015년 필자가 제작한 디지털 인왕제색도에는 겸제 정선이 표현하고자 했던(원작의) 주관적 시간성과 함께(과거의 복제를 위한 디지털이라는) 현재성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역사의 객관적 시간 또한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재해석을 위해 영상매체의 특징인 시간의 확장성을 이용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접목했다.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갈 수 있다면….’ 필자는 겸재 정선이 21세기에 온다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으로 과거와 미래,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면서 3D 컴퓨터그래픽스를 매체로 예술의 세계를 펼쳤으리라 생각하며 작업을 하였다.
디지털 인왕제색도는 3D 디지털 기법의 입체감 속에서 동양화의 고전적인 색채와 감성을 결합한 영상작품이다. 비가 내리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비 온 후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인왕산 풍경이다. 안개가 걷히며 나타나는 것은 위에서 내려다보듯01 멀리서 산봉우리를 바라보듯02 그려진 인왕산이다. 원화는 그저 바라다 보이는 산을 표현했지만, 필자는 벽면에 크게 프로젝션하여 마치 내가 인왕산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갖도록 표현했다.

01 심원법深遠法
02 고원법高遠法

전통적인 동양화의 특징은 여백과 농담표현, 다시점多視點이다. 획은 수묵화의 기본이 되는 요소로 표현 기법들을 좌우한다. 이런 요소들을 Maya나 3DMax 같은 3D 컴퓨터 그래픽스 도구를 사용해 3D 공간에 올바르게 재현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다. 동양화를 3D 애니메이션에 적용하는 것은 서양화를 적용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서양화처럼 고정시점과 원근법을 사용한 작품을 재현할 때는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모델링 하거나 감춰진 배경을 투시법에 따라 분석하고 유추하여 비교적 쉽게 제작할 수 있다.
동양화는 기본적으로 원근법이라는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동양화는 앞서 언급한 특징으로 인해 원화에 대한 시대적 분석과 더불어 제작자의 상상을 통한 공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본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 원화의 느낌 즉, 산점투시散點透視03를 살리기 위해 고정시점과 투시법을 적용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모델링하였다. 작품 속 나무들은 정확한 형태보다는 미점준米點皴04을 사용하여 울창한 산림을 표현하고, 곳곳에 표현된 나무 기둥을 고려하여 멀리 보이는 나무는 판으로 제작하고(카메라 워크로 인해) 카메라 밑으로 지나가는 나무는 판모델링을 삼중으로 교차하여 입체감이 나게 제작하였다.
대기원근법(Aerial Perspective)05으로 중요하고 중심이 되는 부분은 진하게, 멀어지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먹과 채색의 색을 빼 여백으로 사라지게끔 만든다. 안개의 자욱한 느낌을 위해 합성편집 단계에서 안개 파티클을 삽입하였다.

03 말 그대로 보는 시점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흩어져(散點) 관찰하는 방법
04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토산이나 녹음이 무성한 여름 수림을 그릴 때 붓을 옆으로 기울여 큼직한 묵점(墨點)을 찍어나가며 표현하는 방식
05 눈과 대상 간의 공기층이나 빛의 작용 때문에 생기는 대상의 색채 및 윤곽의 변화를 포착하여 거리감을 표현하는 기법

필자는 본 작품을 통해 여러분이 겸재 정선의 자유정신과 선구자적인 창조성을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그가 더욱 빛을 발하기 바란다. 앞으로도 새로운 매체를 접할 때마다 겸재 정선을 떠올리며 더 새로운 도전을 기대할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인간이 상상하는 세계를 제한받아 온 과거의 표현 기법을 넘어 오늘의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의 한계를 질책하고 다양한 예술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과거의 유물들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홀로그램,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등을 통해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의 우수한 문화재들이 다양한 시각적 확장과 더불어 새로운 형식으로 재해석되어 새로우면서도 친근한 명작으로 사람들에게 향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최유미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영상디자인 및 애니메이션 분야의 전문가이다. 국내 창의인성, 예술교육에 전문성을 요하는 중요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으며,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입체영상,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영상디자인 연구 성과가 있다. 1900년대 초부터 일지기 영상을 통한 컴퓨터 그래픽스를 전공하고 연구하며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 특히 한국음악 또는 한국무용과 컬래버를 통해 공연에서 영상미디어를 활용하여 시공간을 확대하고 전통적인 프레임을 벗어나 현실을 새롭게 창조하는 영상의 역할을 연구하며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순수 창작 작품뿐 아니라 겸재 정선의 수묵화, 고흐, 마티스 등 명화에 시간성을 부여하여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시키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진 무대의 표현을 통해 감상자들에게 고양된 내적 체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