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박물관
임진왜란 관련 사료
『경략복국요편 經略復國要編 』국역 출판
글. 이효종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명나라의 임진전쟁』 1 - 5

우리는 보통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서 있는 처지나 환경에 따라, 같은 사건이나 사물일지라도 다르게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역사적 사건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역사 서술에서는 다양한 입장과 관점으로 기술된 사료를 비교·분석하여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려 노력한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임진왜란에 관한 명나라의 시각을 반영한 『명나라의 임진전쟁』 1-5(『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 번역본및 교감·표점본)이다.01 이 책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당시 명나라 경략經略 송응창宋應昌(1536-1606)이 쓴 글을 엮은 『경략복국요편』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원문을 수록한 것이다. 2019년부터 번역 사업을 시작하여 2021년에 번역본과 교감·표점본을 완간하였다. 이 글에서는 책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뒤, 주목해서 읽어야 할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01 이 책은 모두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 이름은 각각 『명나라의 임진전쟁: 출정 전야』 1, 『명나라의 임진전쟁: 평양 수복』 2, 『명나라의 임진전쟁: 강화 논의』 3, 『명나라의 임진전쟁: 전후 처리』 4, 『명나라의 임진전쟁: 교감·표점본』 5이다.
『명나라의 임진전쟁』 1-5 ISBN 9791189946814(세트), 186x230mm, 국립진주박물관 발행

『경략복국요편』은 ‘경략으로 임명된 송응창이 조선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쓴 핵심 문서를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책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이 책은 임진왜란 초기 상황을 명나라의 시각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본군의 거침없는 공세로 조선이 위기에 빠지자, 명군이 참전하여 평양성과 벽제관에서 전투를 치르고 이어서 일본과 강화 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명군이 취한 입장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내밀한 속사정도 엿볼 수 있다.
송응창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부터 1593년 말까지 경략經略으로서 명군을 총지휘하였다. 그는 실제 전투를 지휘했던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에게 전쟁 물자를 지원하고, 명 조정 대신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전쟁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1593년 초에 명군이 평양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이어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하자, 명나라는 협상을 통해 일본군의 철군을 시도하였다.
송응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고, 닝보寧波를 통한 조공을 허락하는 봉공안封貢案을 추진하였다. 그의 강화협상에 대해 선조를 비롯한 조선의 관료, 명 조정의 주전파主戰派와 감찰을 담당한 과도관科道官들이 강하게 비판하였다. 송응창은 조선의 반발을 누르는 한편, 일본군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이후 1593년 철군 논의 과정에서도 일본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조선의 방비책을 고심하였다.

평양성 전투도 平壤城戰鬪圖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176.0cmx390.0cm, 본관10634
『경략복국요편』 화이연해도華夷沿海圖 중 조선도朝鮮圖를 옮긴 것 조선의 군사요충지를 표시한 지도로, 현대 지도와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명나라의 임진전쟁: 출정 전야』 1, p.60

이처럼 『경략복국요편』은 임진왜란 당시 전황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명·일본 삼국의 처지와 전략을 명나라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이 책은 한국·일본 측의 사료를 중심으로 정립된 기존의 임진왜란상에 대해 명나라의 시각이 반영된 연구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역주서에는 꼼꼼한 주석과 상세한 인명록이 수록되어 전문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 책에 수록된 어려운 문서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역주서(제1-4권)와 함께 교감·표점본(제5권)을 발간하여, 독자들이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제 이 책을 읽을 때 주목할 만 한 점을 명나라의 입장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명나라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태의 진위 파악과 함께 일본이 바다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가해올 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오랜 평화로 인해, 명나라의 연해 지역은 군사적으로 정비되지 않았다. 이를 정비·방어하는 것이 명 조정의 일차적인 고민이었다.
그래서 명 조정은 송응창을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서 산둥성山東省에 이르는 연해 지역을 방어하는 경략經略으로 임명한 것이다.02 또 명 조정은 일본군이 요동・산해관을 거쳐 중국 본토로 침공해오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한강·대동강 등 조선의 주요 강에서 배를 띄워 명나라의 연해를 공격하는 상황을 우려하였다.03 이는 일본군의 원래 계획이나 조선의 예측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02 『명나라의 임진전쟁: 출정 전야』 1, p.52, 칙 勅 03 『명나라의 임진전쟁: 출정 전야』 1, pp.58-59, 중국과 조선 연해 지도 서문

둘째, 명나라의 조선 파병은 명나라의 연해를 침입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나라는 먼저 연해의 요충지를 정비하는 조치를 취한 뒤, 일본군의 연해 지역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에 파병한 것이다.04 경략으로 임명된 송응창이 시행한 초기 업무의 많은 경우가 명나라 연해를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런 노력과 함께, 송응창은 평양성과 한성(서울)의 수복을 위해 전략을 짜고 군량과 군대를 확보하는 등 군사적 준비를 진행하였다.05 그 결과 명군은 평양성에서 일본군을 몰아내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하자, 명나라는 일본과의 강화도 생각하게 된 것이다.06

04 『명나라의 임진전쟁: 출정 전야』 1, p.185, 해안 방어 사안의 경략에 관한 상주 05 『명나라의 임진전쟁: 출정 전야』 1, p.469, 진격일정을 보고하는 상주 06 『명나라의 임진전쟁: 평양 수복』 2, p.405,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알리는 선유

셋째, 명나라는 명군의 작전 운영이나 강화 협상에서 주도적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명의 입장이 뚜렷하게 부각된 자료를 직접 살펴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조선은 명군의 군사 정책을 수용하는 입장이었지만 한양 수복 이후 신중하게 진격하는 명군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또 명나라가 일본과 진행한 강화 협상을 반대하였다. 이를 조정하는 것이 송응창이 한 일이었다.07
또 1593년에 일어난 제2차 진주성전투도 진주성을 지키던 수성군의 헌신적인 분투로 전라도로의 침입이 불가능하였다는 해석과 달리, 전라도와 경상도 북부 지역에 배치된 명군의 존재가 일본군의 진출을 막았다는 시각도 제시되어 있다.08

07 『명나라의 임진전쟁: 강화 논의』 3, pp.30-31,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자문; 『명나라의 임진전쟁: 강화 논의』 3, pp.89-90,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자문 08 『명나라의 임진전쟁: 강화 논의』 3, pp.231-232, 경략과 제독이꼭 함께 주둔할 필요가 없다는 사안에 대해 논의하여 올리는 상주

요컨대, 이 책의 내용에는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임진왜란의 서술과 달라 불편하게 여길만한 측면이 있다. 또 책에 나오는 내용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명나라의 시각으로 정리된 저술을 기존의 사료와 비교·분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또, 임진왜란이 조선·명·일본 삼국의 병사들이 싸운 동아시아 삼국전쟁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주목되지 않은 명나라 측의 입장을 서술한 이 책의 내용은 새로운 임진왜란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이 모일 때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뿐 아니라, 당시 국제 정치를 이해하는 혜안을 갖게 될 것이다.
앞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국역사업을 연차적으로 진행할 것이며, 2021년부터 정유재란 때 경략이었던 형개邢玠(1540-1612)가 쓴 『경략어왜주의經略禦倭奏議』의 국역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외 중요 사료의 국역은 임진왜란에 대한 시각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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