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박물관 아카이브 기행 54
“뒤늦게나마 나온 「가이드·부크」”
글. 장상훈 국립진주박물관장
1964년 국립박물관 개관 19년 만의 상설전시 안내 도록 발간

1964년 국립박물관이 개관 19년 만에 상설전시 안내 도록을 발간한 일을 전하면서 경향신문은 만시지탄의 뜻을 담아 기사 제목을 “뒤늦게나마 나온 「가이드·부크」”라고 뽑았다.01 1947년, 설명문으로만 이루어진 팸플릿 형태의 상설전시 안내문을 펴낸 뒤로,02 이내 국립박물관은 한국전쟁을 맞았고 전쟁이 끝난 뒤 피해를 수습하고 박물관 기능을 정상화하는 활동을 펼쳤지만 전시품의 사진을 담은 상설전시 도록을 발간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놀라운 것은 이때 발간된 도록이 한국어판이 아니라 영어판이었다는 점이다. 도1 당시 경향신문은 국립박물관에 “변변한 「가이드·부크」가 하나 없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우호적 외국인 손님맞이를 하면서 훌륭한 국제 외교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박물관”에 안내서가 없는 것은 “나라 체면과 곧장 직결되는 문제” 라고 주장했다.03
이 신문의 논조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당시 나라의 체면을 깎는 문제는 한국인들이 읽을 박물관 안내서가 없는 점이라기보다는 박물관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내보일 영문 안내서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듯한 느낌을 주는 당시의 상황 인식 때문이었을까? 국립박물관이 한국어판 상설전시 도록을 갖게 된 것은 국립박물관이 경복궁 안의 새로운 청사로 이전 개관하는 1972년에 이르러서였다. 1964년 영어판을 내놓으면서 국립박물관이 한국어판의 간행을 약속한 지 8년만이었다.04 국립박물관이 처음 영어판을 내고, 1968년과 1970년 각각 제2차 개정본과 제3차 개정본을 내는 사이에도 한국어판은 나오지 못했다.

01 『경향신문』 1964.9.28.자 5면, “뒤늦게나마 나온 「가이드 · 부크」” 및 『동아일보』 1964.9.12.자 5면, “국립박물관 소장 국보 안내서 발간”. 02 장상훈, “새로 확인한 관사 자료로 보는 1940년대 후반의 국립박물관”, 국립박물관 아카이브 기행 22, 『박물관신문』 2019년 10월호, p.28. 03 경향신문, 위의 글. 04 경향신문, 위의 글.
도1. 국립박물관 영문 안내서(1964) 표지

이러한 상황은 당시 국립박물관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와 한계, 그리고 과제를 보여준다. 국립박물관 안내서 발간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예산 사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진 도판을 싣는 데다 고급 용지를 써야 하는 도록 형식의 안내서를 간행하는 데는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결국 영어판으로나마 국립박물관 안내서를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으로부터 출판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립박물관은 이렇게 간행한 영어판 안내서를 외국인 방문객에게 판매하거나 무상으로 증정했다.05
미국 공익재단의 예산 지원으로 가능해진 영어판 발간 사업에 비해, 한국어판 발간은 정부 예산을 확보해서 추진하거나 또는 민간 출판사의 참여를 유치해야 했겠지만 그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까지 국립박물관은 비매품으로 학술서적을 출판해 왔을 뿐, 판매용 도서의 발간을 도모한 경험은 없었다. 따라서 국내의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가의 한국어판 박물관 상설전시 도록을 판매용으로 내놓는 데는 큰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05 김재원 국립박물관 관장이 1966년 11월 30일에 스타인버그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국립박물관이 영어판 도록을 판매하여 그 수익을 경주분관의 안내서 발간 사업에 충당하고자 했음을 알려주는 내용이 실려 있다(장상훈 편저, 『김재원 국립박물관 초대 관장 영문 편지』, 제1권, 국립중앙박물관, 2019, pp.206-207).

김재원 국립박물관 관장이 남긴 영문 편지 중에는 아시아재단과 안내서 발간 사업을 논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1964년 6월 18일 김재원 관장은 아시아재단 서울지부의 스타인버그(David Steinberg) 부장에게 편지를 보내, “영문판 상설전시 도록을 인쇄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근간 준비가 될 것”임을 알렸다.도2
아울러 아시아재단이 당초 지원하기로 한 금액이 총 2,000달러인데, 그중 인쇄용지 구입에 500달러, 조판과 인쇄에 1,000달러가 소요될 것이므로 나머지 500달러로는 한국어판을 인쇄할 동일 분량의 용지와 인쇄 잉크를 구입하기를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마침 달러화와 원화의 환율이 조정된 덕분이었다.06
김재원 관장의 요청에 대해 아시아재단 서울지부는 한국어판 인쇄용지의 구입을 승인했고 홍콩으로부터 용지를 구입해주겠다는 회신을 보냈다.07 그러나 이 용지가 실제로 도착했는지, 또 한국어판 인쇄에 사용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 영어판 이외에 한국어판이 발간되었다는 분명한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자료로는 국립박물관이 영문판 인쇄비용으로 쓴 254,000원을 아시아재단이 국립박물관에 지급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08
한국의 국립박물관 안내서로 영문판만을 펴내는 점에 대해 국립박물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박물관은 1966년 아시아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주분관 안내서를 영문판(Kyǒngju and Kyǒngju Museum)으로 낼 때,09,도3 권말에 9쪽 분량의 한국어 설명문을 덧붙였다. 또한 본문의 도판 캡션도 영어를 기본으로 하되 유적 및 유물의 명칭은 한자도 병기했다.10 하지만 국립박물관 영어판 안내서의 경우는 1968년과 1970년의 개정판 발간 시에도 한국어 설명문을 덧붙이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11 영어판과 별도의 한국어판을 펴내는 것을 마땅한 일로 여겼으되, 현실적인 여건이 뒤따르지 못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06 김재원 관장이 1964년 6월 18일에 스타인버그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장상훈 편저, 『김재원 국립박물관 초대 관장 영문 편지』, 제1권, 국립중앙박물관, 2019, p.155). 07 『스타인버그 지부장이 1964년 6월 22일 김재원 관장에게 보낸 편지(장상훈 편저, 위의 책, p.156, 2019). 08 장상훈 편저, 위의 책, 2019, pp.158-159. 09 장상훈 편저, 위의 책, 2019, p.192, pp.206-207, p.215. 10 1966년 6월 국립박물관은 경주분관 안내서의 출판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부여분관과 공주분관의 영문판 안내서 발간도 도모했다. 이때도 국립박물관은 아시아재단의 지원을 요청했다(장상훈 편저, 위의 책, 2019, p.206). 당시 아시아재단의 반응은 확인할 수 없으며, 부여와 공주의 영문판 안내서는 발간되지 않았다. 11 국립박물관 영문판 안내서 1968년 개정판도 아시아재단의 자금 지원으로 발간된 사실이 안내서에 기재되어 있다.
도2. 김재원 관장이 스타인버그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장에게 보낸 편지 부본(1964.6.18.자.)
  • 도3. 국립박물관 경주분관 안내서(1966) 표지
  • 도4. 국립박물관 영문안내서 개정판(1968) 표지

국립박물관 영문판 안내서의 표지를 장식한 유물은 국보 금동반가사유상(본관2789)이었다.도4 오늘날 우리에게 국보 제78호라는 옛 호칭으로 더 익숙한 이 반가상은 1964년 국립박물관 안내서 표지에 실림으로써 국립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으로서 위치를 분명히 하게 되었다. 1957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 8개 도시에서 열린 《한국국보전》에 출품된 뒤, 이 반가상이 국보로 지정된 것이 1959년 12월이었다.
당시에는 덕수궁미술관 소장품이었던 또 다른 금동반가사유상(덕수3312)도 이때 함께 국보로 지정되었다.12 일제강점기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위도 갖지 못했던 두 반가상이 《한국국보전》을 거치면서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국보 중의 국보로서 위치를 점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문판 안내서는 국립박물관을 소개하는 글로 시작된다. 박물관이 1915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개관했으며, 광복 이후 이 박물관이 국립박물관이 되었음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소장 중이거나 전시 중인 유물들은 박물관 직원들이 일련의 조사와 발굴로 획득한 가치 있는 것으로 출처가 분명한 것임을 자랑하고 있다.

12 1966년 6월 국립박물관은 경주분관 안내서의 출판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부여분관과 공주분관의 영문판 안내서 발간도 도모했다. 이때도 국립박물관은 아시아재단의 지원을 요청했다(장상훈 편저, 위의 책, 2019, p.206). 당시 아시아재단의 반응은 확인할 수 없으며, 부여와 공주의 영문판 안내서는 발간되지 않았다.

1960년대 국립박물관 상설전시의 실상을 상세히 알려주는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에서, 영문판 국립박물관 안내서는 국립박물관 최초의 상설전시 도록 그 자체의 면모뿐만 아니라 당시 상설전시의 내용을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국립박물관 소개 글 뒤로 한국사 개관(7쪽 분량)이 이어지고, 불상(2쪽 분량), 도자기(2쪽 분량), 회화(2쪽 분량)에 대한 설명문이 뒤따르는데, 이는 선사시대도5 , 낙랑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불상, 도자기, 회화의 총 7부로 구성된 유물 도판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 안내서에는 모두 203건의 유물 도판을 실었는데, 도판의 촬영을 담당한 사진가는 1961년에 발간된 『감은사지 발굴 조사 보고서』의 도판 사진을 촬영했던 이경모(李坰模, 1926~2001) 씨였다. 국립박물관은 안내서에 수록된 도판의 선정에 있어서, 1945년 국립박물관의 발족 이래 추진한 여러 유적 조사에서 발굴한 유물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고고학의 체계를 자주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국립박물관이 기울인 노력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 도5. 국립박물관 영문 안내서(1964) 도판(선사시대)
  • 도6. 국립박물관 영문 안내서(1964) 도판(경주 호우총 출토품)

1946년 경주 호우총 壺杅塚 에서 발굴한 호우는 물론이고도6, 1962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발굴한 지석묘에서 출토된 홍도, 마제석검, 마제석촉 사진에 더해 당시 국립박물관에 이전해서 전시 중이던 지석묘 하부 석관 전시 사진을 안내서에 도판으로 수록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1959년 국립박물관의 조사 중에 발견되어 송림사松林寺로부터 기증받은 송림사 전탑 사리기와 같은 해 경주 감은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기의 도판도 포함되었다.도7 하지만 1964년의 영문 안내서 문안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의 시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점도 확인된다. 특히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그러하다.13
“한국에서 예술적인 자극과 상상력의 원천이었던 불교 대신 유교가 지식계를 장악하게 되면서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사고의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았다”는 안내서의 기술 내용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14 일제 식민사관의 주된 공격 대상이었던 조선시대의 문화사적 의미와 가치를 아직 온전히 평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회화와 도자기는 예외적인 분야로 보고 비중 있게 평가하고 있어서, 일제강점기 이래 인식의 부조화마저 느껴진다.도8,도9
또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학자들이 구축한 한국 고고학 체계의 영향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선사시대를 신석기시대-초기금속시대-선낙랑先樂浪 시대로 구분하여,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상정하지 않았다. 낙랑의 존속 시기에 별도의 시대격을 부여한 것도 일제강점기 이래의 시각이었다. 특히 “낙랑 문화는 순전히 중국의 것으로 대륙으로부터 한국에 이식된 것”이었다는 기술도 일본인 학자들의 입장 그대로였다.15
국립박물관이 이러한 시각을 극복하는 데는 이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13 關野貞, 『朝鮮美術史』, 1932, pp. 3-7 참조 14 National Museum of Korea, Guide book, 1964, p.10. 15 National Museum of Korea, Guide book, 1964, pp.5-6.
도7. 국립박물관 영문 안내서(1964) 도판(경주 감은사지 석탑 사리기와 송림사 사리기)
도8. 국립박물관 영문 안내서(1964) 도판(도자)
도9. 국립박물관 영문 안내서(1964) 도판(회화)

이와 관련하여, 영문판 안내서를 발간하기 1년 전인 1963년 국립박물관이 펴낸 『우리나라 선사시대 이야기』라는 대중용 소책자에 한국의 선사시대 연구에 대한 국립박물관의 인식과 포부가 잘 담겨 있어 주목된다.16,도10 책을 읽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듯 대화체로 기술된 이 책은 제1부 ‘선사시대는 어떤 시절일까요?’, 제2부 ‘우리나라의 선사시대’로 구성되어 있고, 제2부는 다시 ‘석기시대’와 ‘금속문화의 전래’의 두절로 구성되어 있다.도11
제1부에서 선사시대에 대해 설명하면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의 세계문화사상 보편성을 제시한 것은 향후 한국 선사시대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고 여겨진다.17 같은 맥락에서 제2부에서는 한국 선사시대 연구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면서 향후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아직까지의 성과로서는 석기시대에 속하는 무문토기 유적을 청동시기의 무문토기 유적에서 구별하여 낼만큼 연구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하루속히 좋은 연구가 이루어져서 밝혀낼 수 있는 날이 와야겠습니다.” 이어서이 책자는 일반 독자들에게 “우리에게 먼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조그마한 토기조각이나 돌조각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또 찾아가서 여기서 다 못 들은 옛일들을 마저 들어보십시다.”라고 권한다.18 이처럼 국립박물관은 당시 연구의 문제점과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타개할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특히 1962년부터 1967년까지 전국의 지석묘를 대상으로 진행한 학술조사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처럼 1960년대 국립박물관과 한국 고고학계가 축적한 연구 성과는 1968년과 1970년의 영문판 안내서 개정판에도 차츰 반영되어 나갈 수 있었다. 예컨대 오늘날,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는 유물의 시기를, 국립박물관 영문판 안내서에서 신석기시대(초판)→초기 금속시대(제2판)→청동기시대(제3판)로 조정해 나가는 양상을 살필 수 있다.19

16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22쪽 분량의 이 소책자를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확인하여 필자에게 제보해 주었기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17 국립박물관, 『우리나라 선사시대 이야기』, 1963, pp.1-5. 18 이 소책자가 발간된 계기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1963년 국립박물관이 추진한 어린이박물관학교 사업과의 관련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할 수 있다(『동아일보』 1963.2.15.자, 5면, “새로 생길 어린이박물관학교”). 19 양성혁,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시대 전시 변천 연구」, 『고고학지』 25, 2019, pp.207-211.
도10. 『우리나라 선사시대 이야기』(1963) 표지
도11. 『우리나라 선사시대 이야기』(1963)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