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읽어드립니다 - 소장품
어린 구도자의 여정
『대방광불화엄경』 권69
글. 김영희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
『대방광불화엄경』 권69 고려 13-14세기, 절첩 갈색 종이에 금니, 30.9×780.0cm, 국립중앙박물관, 2021년 고故 이건희 기증

꽃으로 장엄한 크고 크신 부처님

‘진리眞理’는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까? 우주 만물의 이치에 대한 가장 핵심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이자 대답, 그것을 불교에서는 ‘법法’이라 부른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이 ‘법’을 거대한 부처의 모습으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경전은 꽃으로 장엄한 [華嚴] 크고 크신 부처님 [大方廣佛]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의 부처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빛과 같이 무한히 존재한다. 이 부처의 이름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 ‘빛이 널리 두루 비춘다[光明遍照]’는 뜻의 범어 ‘Vairocana’를 한자어로 옮긴 말이다.

진리를 찾아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주인공인 비로자나불은 세상의 모든 곳에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법을 깨닫고 실천한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에 걸친 수행으로 부처의 마음을 얻었다. 『대방광불화엄경』에서는 시종일관 수행하는 이들이 부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실천하는 보살행菩薩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이 「입법계품」에서 종합적으로 표현된다. 「입법계품」은 화엄경의 여러 품 중에서도 가장 길고 풍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문과 분리하여 따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석가모니 부처가 7곳에서 9번에 걸쳐 설법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01 「입법계품」에서는 그중 마지막 9번째의 법회가 펼쳐진다. 이 법회에서 부처는 깊은 삼매에 들었고, 문수보살은 법회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 가운데 깨달음을 얻을 만한 훌륭한 동자를 발견하였다. 그가 바로 「입법계품」의 주인공인 선재동자로, 문수보살은 그에게 지혜를 얻으려면 남쪽으로 가면서 여러 선지식을 찾아가 가르침을 얻기를 권했다.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의 말을 따라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진리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01 80권본 『대방광불화엄경』(T.279)을 기준으로 한다.
온갖 법계의 왕이시여,
법보法寶로 길잡이 삼아
걸림 없이 허공에 다니시니
바라건대 나를 가르쳐 주소서.
-『대방광불화엄경』 권62 「입법계품」

금으로 그린 선재동자의 여정, 『대방광불화엄경』 권6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방광불화엄경』 권69는 갈색 종이 위에 가느다란 금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 필사본 경전이다. 앞뒤로 접어 보관하는 절첩본 형태이며, 모두 펼쳤을 때 가로 길이가 780cm에 달한다. 가장 앞부분에는 『대방광불화엄경』 권69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다.
그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오른쪽에는 『대방광불화엄경』의 주존인 비로자나불과 여러 보살이 모인 법회 장면이 그려져 있다.
왼쪽에는 「입법계품」 내용 중 선재동자와 권69에 등장하는 여러 선지식이 나타난다. 각 장면 옆에는 사각형의 방제旁題를 마련하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썼다. 이야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전개된다. 오른쪽부터 선재동자가 33번째로 찾아간 선지식인 보덕정광주야신, 34번째로 찾아간 선지식인 희목관찰주야신과 함께 이선지식의 가르침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다.
선재동자가 34번째로 찾아간 희목관찰주야신은 깊은 삼매에 들어 법회에 모인 중생들을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고 있었다. 선재동자는 이를 보고 찬탄하며, 희목관찰주야신에게 언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는지 질문하였다. 이에 희목관찰주야신은 아주 오래전 전생에 있었던 일을 노래로 들려주었다.
희목관찰주야신은 먼 옛날 전생에 ‘향당보’라는 나라의 왕비 ‘현해보녀’였다. 어느 깊은 밤, 현해보녀의 꿈에 덕해여래가 나타나 온몸에서 빛을 발하며 설법하였다. 현해보녀는 꿈속에서 덕해여래의 설법을 들으며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만 명의 밤의 신무리가 내려와 현해보녀를 깨우며 말했다.

슬기로운 이여, 빨리 일어나라.
너의 나라에 부처님 나시니
긴 세월에 만나기 어렵고 뵙기만 하면 청정해지나니.
-『대방광불화엄경』 권69 「입법계품」

현해보녀는 이 노래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온 궁궐의 사람들과 함께 부처에게 공양하였다. 이때 그는 언젠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여러 번의 생을 거쳐 다시 태어나면서 수행을 거듭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림에는 온몸에서 빛을 발하며 설법하는 덕해여래와 하늘을 가득 메운 밤의 신들, 그리고 궁궐에서 부처를 맞이하는 현해보녀가 그려져 있다.
독립된 장면을 배치하면서도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도록 구성하였으며, 빈 공간은 가로 선과 수풀, 구름, 점 등으로 채웠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선재동자는 왼쪽 아래에 배치된 희목관찰주야신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간략하게 표현되었지만 「입법계품」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로서 확실한 존재감이 나타난다.
이 작품은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공개되고 있다. 진리를 찾기 위한 모험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 선재동자가 떠난 구도의 여정은 오늘날까지도 전시실에 작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이다.

덕해여래를 만난 현해보녀
진리를 찾아 떠난 선재동자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전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