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박물관 아카이브기행 56
국립박물관과 사진가
글. 장상훈 국립진주박물관장
1940년대 후반 국립박물관의 사진 전담 직원 운용 기록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을 앞에 두고 즐거운 표정으로 연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언젠가 이 사진들은 이 풍요로운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 기록물로 남게 될까? 필자는 지난 5년여 시간 동안 국립박물관의 초기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이곳저곳에서 찾아 소개해 왔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이 사진들은 국립박물관 직원들이 박물관의 기틀을 세우던 일을 증거하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국립박물관은 설립 초기부터 사진 촬영 전담 직원을 채용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사진 전담 직원이 활동하고 있고 있기에,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2002년까지 50년 이상 국립박물관이 사진 촬영 전담 직원을 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1940년대 후반의 어려운 시기에 국립박물관이 사진 전담 직원을 운용했다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한 일이다.
국립박물관의 기틀을 세운 김재원 초대 관장이 사진 전담 직원의 채용을 염두에 둔 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인력 운영 사례를 참고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총독부박물관은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한 발굴조사 사업의 사진 기록을 위해 전담 직원 사와(澤俊一)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국립박물관이 사진가를 채용한 것은 자주적인 고고학 연구 체계의 수립을 목표로 독자적인 발굴조사 사업을 추진하던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국립박물관이 강원도 원주 출신의 사진가 이건중(李健中, 1916-1979)을 채용한 시점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이건중은 그의 약력에 국립박물관 입사 시점을 1946년 2월로 기록하고 있다.01,도1 광복 이듬해였던 이즈음 국립박물관은 발굴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고, 실제로 1946년 5월에 진행한 호우총 발굴 조사에 그가 참가했다. 광복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한국인이 주도할 수 있었던 유적 발굴조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 그를 채용한 것이었다.도2,3
당시 국립박물관의 열의는 대단한 것이어서,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으로 발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조선영화사의 이용민(李庸民, 1916?-1982) 촬영기사를 초빙하기도 했다.02 이건중은 1932년 5월 제일인상사진연구소第一人像寫眞硏究所 이근우李根雨의 문하에 들어가 5년간 사진을 배웠고, 1937년 7월부터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 사진부 기사로 활동했다. 이후 1938년 11월 만주로 건너가 광복 때까지 무단쟝성(牡丹江省) 쑤이양현(綏陽縣)에서 활동했다. 03

01 이건중, 『한국의 멋』, 1978에서 옮겨 실음. 02 ‘신라의 고분’이라는 이름이 붙은이 기록영화는 15분 분량으로,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으로 서울 국도극장에서 상영되었다.『경향신문』 1975.5.3.자, 5면, “문화재 발굴사건과 비화 1: 경주서 고구려 제기가” 참조. 03 위의 책. 이때 일본군의 종군 사진사로 일했던 경력은 이건중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이 되었다고 한다(황정수,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유물 사진가: 정관 이건중의 삶과 사진, 예술가는 ‘작품’으로 이름을 남긴다”, 황정수의 서울미술기행: 북촌 인사동편, 『오마이뉴스』 201.12.19. 참조)
도1. 이건중(1916-1979) 근영
  • 도2. 이건중이 촬영한 경주 호우총 발굴 조사 광경 (건판27596)
  • 도3. 이건중이 촬영한 경북·경주 호우총 마구 (건판24752)

국립박물관이 1947년부터 1949년까지 펴낸 『관보館報』에는 그의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1948년 2월 29일 국립박물관을 퇴직할 때까지 국립박물관의 조사 사업에 참가해 사진을 촬영했다.04
1946년 5월의 호우총壺杅塚 발굴조사 사업과 관련하여, 『관보』 제1호는 “1946년 4월 30일, 김 관장, 서갑록徐甲祿, 이건중, 임천林泉, 아리미쓰(有光敎一), 경주 고분 발굴조사 차로 출발”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5月 2日까지 제반 준비를 끝마치고 5月 3日 시굴始掘. 김 관장 책임 하에 일인日人 아리미쓰(有光) 씨의 지도를 받어 관원館員 서갑록은 기록, 임천(은) 제도製圖, 이건중은 사진, 현장 감독은 서徐(갑록) 등 각각 분담하였다.”라고 되어 있다.05 이때의 결과물을 종합하여 1948년 국립박물관이 발간한 고적조사보고서인 『호우총과 은령총』에는 이건중이 촬영한 유구遺構 및 유물 사진과 임천의 실측도면이 실려 있다.06
1947년 5월에는 이홍직 진열과장의 지휘 하에 장단군 법당방法堂坊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이때도 사진은 이건중이, 제도는 임천이 담당했다.07
이 고분군은 이미 도굴 피해를 입은 터라 특별한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제2호분 내부에서 십이지상 벽화가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동벽과 서벽에 각각 4명, 북벽과 남벽에 각각 2명씩 그려져 있던 채색 인물상은 대부분 탈락된 상태였지만, 일부 남아 있는 벽화에서 각 인물상이 도포를 입고 옥패玉佩를 두른 위에 보관寶冠을 쓰고 홀笏을 쥐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08 조사 당시의 벽화 모습을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은 이건중이 촬영한 사진 덕분이다.도4,5

04 국립박물관, 『관보』 4, 1948, p.4. 05 국립박물관, 『관보』 1, 1947, pp.5-6. 경주 호우총 발굴 조사에 대해서는 장상훈, 「국립박물관의 첫 발굴조사, 호우총 발굴」 , 국립박물관 아카이브 기행 제5호, 『박물관신문』 2018년 5월호, 국립중앙박물관, pp.24-25 참조. 06 국립박물관, 『금령총과 은령총』, 1948. 07 국립박물관, 『관보』 2, 1947, pp.4-5. 08 이홍직, 「고려고분벽화 발굴기-장단군 진서면 법당방」, 『한국고문화논고』, 을유문화사, 1954.
  • 도4. 이건중이 촬영한 장단 법당방 벽화고분 석실 동벽 진관 辰冠 인물(건판23097)
  • 도5. 이건중이 촬영한 장단 법당방 벽화고분 석실 서벽 술관 戌冠 인물(건판23092)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은 이건중이 1946년 경주 호우총에서, 또한 1947년 장단 법당방 고려시대 고분에서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들을 “이뮤지엄(www.emuseum.go.kr)”을 통해 누구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건중이 촬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도6 이건중이 국립박물관에 입사하던 1946년 2월 미군정은 원각사지 석탑의 상층 탑신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09 미군 공병대가 추진한 복원 작업의 과정과 결과를 담은 사진을 비롯하여 복원에 관여한 인물들의 단체 기념사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건중의 입사 시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진들을 촬영한 사진가는 이건중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09 『조선일보』 1946.2.18., 2면, “四世紀半만에 原型 復元”.
도6. 원각사지 10층석탑 복원 광경 (1946년 2월)(건판22282)

한편 이건중은 국립박물관에 재직할 때부터 박물관 업무 이외의 사진 창작 활동에도 관여했다. 1946년 5월에는 대한사진예술연구회에 입회했고, 1947년 6월에 열린 제1회 조선예술사진전에서는 ‘화설花雪’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준특선에 뽑혔다.10 국립박물관을 퇴사한 이후, 이건중은 1948년 10월부터 서울시경의 감식사진 담당기사로 활동하면서도 문화재 사진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갔다. 1949년 외무부에서 주최한 관광사진 공모전에 이건중은 ‘석조전’ 사진을 출품해서 특선 없는 준특선에 뽑혔다.11
그의 회고에 따르면 이건중은 “문공부에 몸을 담기도 했고 프리랜서로서 사진을 하기도 하고 개인전도 13회나 가졌었다.” 또한 그는 서울사우회,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한국사진작가단의 일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국전國展 등 여러 사진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12 그가 작고하기 1년 전인 1978년, 그는 공병우의 도움을 받아 사진 인생을 정리한 사진 작품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작품집의 이름을 『한국의 멋』으로 명명한 이유를, “한민족의 전통적인 멋진 물건의 하나이며 영구히 남아야 할 것 등을 작품으로 취급하였고 기중에는 마멸 또는 변화하여 가고 한편으로는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필름에 담아 오래 간직하고자 하여 엮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그는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얻은 영감을 평생에 걸쳐 작품 활동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의 작품집에는 불국사, 석굴암, 수원 화성,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통도사의 면면을 다양한 앵글로 잡은 사진을 비롯해서, 신라 토기, 성덕대왕신종, 하회탈, 조선백자, 불상 광배 등 문화재를 담은 사진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국립박물관의 신라시대 토기 전시 모습이나 소장품 정리 광경, 그리고 연구실 모습까지 박물관의 다양한 인상을 담은 사진도 들어 있다.

10 『경향신문』 1947.6.29., 2면, “제1회 조선예술사진전 입선심사 발표”. 11 『동아일보』 1949.10.12.자, 2면, “관광사진 입선자” 12 이건중, 앞의 글. 12 이건중, 앞의 글.

이 중 ‘연구실의 일우一隅’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은 1960년대 국립박물관 미술과장으로 도자기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던 최순우 과장의 연구실을 촬영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여러 개의 목제 사방탁자에는 서적과 도자기가 놓여 있고, 탁자 위에는 정리 중인 도자기 파편을 가지런히 담은 상자가 놓여 있다.도7 무엇보다 1963년 1월 최순우 과장이 기획하여 개최했던 ‘꽃꽂이와 문방文房 오브제’ 특별전에 출품되었을 작품이 사방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띤다.13 그 옆으로는 유적에서 발견되었을 자기 파편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복원해 놓은 도자기가 놓여 있다.도8

13 장상훈, “가장 많은 특별전시회가 열린 특별한 한 해”, 국립박물관 아카이브 기행 52, 『박물관신문』 2022년 4월호, 국립중앙박물관, p.27.
도7. 이건중 작 '연구실의 일우 一隅 ' 이건중, 『한국의 멋』, 1978에서 옮겨 실음
도8. 이건중 작 '토기군 土器群 ' 이건중, 『한국의 멋』, 1978에서 옮겨 실음

1948년 2월 이건중이 퇴직한 이후 국립박물관은 새로운 사진사를 채용했다. 김재원 관장은 그의 회고록에 당시 새로 채용한 사진사가 1950년 전쟁이 일어난 뒤 공산당원으로 드러났다는 기록을 남겼다.14 이후 국립박물관은 2002년까지 오랜 시간 동안 사진 촬영 전담 직원을 두지 못했다. 대신 국립박물관은 단위 사업 별로 외부 사진가를 초빙해서 사진 촬영 업무를 맡기게 되었다. 이 중 두드러진 인물이 사진가 이경모(李坰謨, 1926-2001)이다.
이건중이 사진을 배웠던 제일인상사진연구소가 1949년 주최하고 경향신문이 후원한 ‘어린이 사진전’15에서 이건중과 함께 우수상을 수상했던 사진가가 바로 전남 광양 출신의 이경모였다. 그는 1946년부터 현 광주일보의 전신인 호남신문사의 사진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여순 사건을 취재 보도했으며, 1950년대부터는 문화재 사진 촬영에 몰두했다.
1957년 1월 이경모는 이건중과 함께 7명으로 구성된 한국사진작가단의 일원이 되어 2년간 활동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 공보실의 의뢰를 받아 『Korea old and new』에 수록될 사진을 촬영했는데, 한국의 전통을 대표하는 유적과 고건축물이 주요 대상이 되었다.16 1957년에는 문교부가 지정문화재 사진집인 『국보도록』을 기획하여 발간할 때, 공예편과 불상편에 수록될 사진을 촬영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이경모는 1964년 국립박물관이 영문 전시 안내서를 발간할 때 이 책에 수록될 사진들을 촬영하는 등 국립박물관과 많은 작업을 함께했다.17
그의 서라벌예술대학 사진과 제자 한석홍(韓晳弘, 1945-2015)이 1971년 국립박물관의 “호암 수집 한국미술 특별전” 도록에 실릴 사진 촬영을 시작으로 이후 30여 년간 국립박물관의 문화재 도록 사진 촬영 작업을 도맡다시피 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전통미술의 세계, 한석홍 사진전”에 대해 이경모는 “한석홍은 1967년 나의 제자로서 사회에 배출되었고 …… 한 분야에서 20여 년 동안 공들인 그 정상과 노고에 사진인의 한 사람으로서 찬사를 보내며 더욱 그 집념을 가꾸어 주기 바란다”며 찬사와 격려의 마음을 보내고 있다.18

14 김재원, 『경복궁야화』, 탐구당, 1992, p.64. 15 『경향신문』 1949.5.4.자, 2면, “어린이 사진전 개막” 16 김계원, 「사진가의 시선에 담긴 석굴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2021, pp.144-145. 17 National Museum of Korea, Guide book, 1968. 18 국립중앙박물관, “전통미술의 세계, 국립중앙박물관 초대. 한석홍 사진전” 리플렛(198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