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다음
모두에게 열린 박물관
글. 이현숙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디자인 전문경력관
관람 경험과 공유의 폭을 넓히는 모두의 박물관을 위하여

박물관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여러 사람들이 박물관에 쉽게 접근하고, 박물관에서 환영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박물관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자세가 박물관 직원들에게 점점 더 요구되고 있다. 박물관을 찾는 누구나 일상 속 어느 날이 설레고 흥분된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박물관은 대체로 ‘비(非)장애인’ 방문객을 위한 장소이다. 휠체어를 탄 관람객이 좀 더 편리하도록 시설 접근성이 개선되고 있지만, 전시실에서 다른 관람객과 동일하게 전시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은 미흡하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나이, 키, 능력과 어떠한 장애에도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박물관에 접근 가능하고, 전시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 설계와 구성이 필요하다.

박물관 접근성(Accessibility)은 법규에서 규정한 시설 접근성뿐만 아니라 정보 및 소통 분야인 사회적 접근성을 포함한다. 박물관 건물 안에서의 시설 접근성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도착한 지점부터 박물관 건물까지의 시설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유모차 사용자, 노년층, 휠체어 사용자 등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주차장 또는 대중교통수단 하차지점에서 전시실까지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전시관 안에서는 전시품을 관람하고 움직일 때 편안하도록 통로 폭과 진열대 높이를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서는 박물관 정보 전달 제공 방식이 개선되어야 정보 및 소통 분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박물관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누리집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에 따라 관람객의 방문 전 박물관에 대한 첫인상과 방문 후 관람 소감이 좌우된다. 정보가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야 하며, 관람객에 따라 정보를 구분하여 제공해야 한다. 오프라인 공간인 전시실에서 제공하는 기존의 정보 전달 방식이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장벽일 수 있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편리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문을 디자인하고 배치해야 한다. 설명문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활자 크기를 키우고 글꼴을 선정하고 색상의 대비 효과를 끌어올려야 한다.
저시력자를 위해 대활자로 인쇄한 설명문 책자를 전시실 입구에 비치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이동식 의자를 비치하면 오래 서서 전시품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전시실 구조 및 전시 구성을 안내하는 점자 블록과 점자 안내판이 있으면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박물관 관람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수어통역사와 장애유형 별로 응대할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

사유의 방 점자 책자

시설 및 정보 전달 방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박물관 직원과 비(非)장애 관람객의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일 수 있는 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장애인이 박물관을 접근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장애 유형에 따라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직원을 교육하고 대응 안내서를 제작하여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박물관 전시 관람의 접근성 향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되어 가고 있다. 시각을 활용하여 체험하는 박물관의 특성상 시각 장애가 있거나 시력이 좋지 않은 방문객에게도 박물관은 불편한 장소이다.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층 전시 접근성을 높여 박물관 관람 경험을, 공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최근 박물관 전시의 추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립국어원과 함께 상설전시실 전시품을 설명하는 수어 동영상 607건을 제작하여 모바일 전시안내시스템에서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은 2021년 세계문화관을 개편하면서 각 전시실 입구에 ‘손으로 만나는 세계문화’ 체험물을 설치했다. 2022년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는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과 동자석, 금속공예품 등을 복제한 촉각 체험물과 이를 설명하는 점자안내문을 설치했다. 전시품을 3D스캔한 자료로 전시품 모양 그대로 만들어 모든 관람객이 직접 만져보며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시각을 넘어서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다양한 감각으로 전시 감상을 할 수 있게 전시물을 제공하면, 시각·청각 장애인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전시 감상의 폭이 넓어진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 전경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촉각체험 공간
동자석 촉각체험 공간
세계문화관 일본실 촉각체험 공간

영상연출 분야에서도 새로운 햅틱 기술로 관람 층을 넓힐 수 있다. 프라하미술관에서는 소장하지 않은 세계 각국의 유명 작품 3점 즉, 〈네페르티티 흉상〉, 미켈란젤로의〈다비드〉, 〈밀로의 비너스〉를 대상으로 VR 고글을 쓰지 않고, 햅틱이라는 장갑을 끼고 만져보는 전시를 기획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전시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처럼 박물관에서는 모든 관람객이 스스로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전시를 경험할 수 있는 다감각 전시물을 선보여야 한다.

프라하미술관 햅틱 체험 유튜브 화면 캡처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지적 활동 공간이다. 그러나 가끔씩 일상생활 속 박물관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을지 깨닫곤 한다. 신체적 어려움뿐 아니라 마음의 불안함과 우울함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 박물관은 몸과 마음이 취약한 사람에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박물관 사람들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필자의 아들이 공부하는 초등 5학년 사회 교과서를 잠깐 봤다. 인권 존중과 정의로운 사회 단원에 “우리는 누구나 안전하게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은 나와 똑같은 권리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내용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박물관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마음 따뜻한 열린 장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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