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의 방
비가 오면 피어나는 종이꽃
글. 편집팀
윤규상 전북 무형문화재 제45호 우산장

장마를 맞이한 한반도는 폭염과 더불어 얄미우리만치 변덕스러운 비바람과 게릴라성 호우를 겪는 중이다. 국내 유일의 우산장을 만나러간 전주에서도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피할 순 없었다. 누군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하나는 비가 내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쓴다는 사실일 거다.

“1958년, 18세 나이에 처음 지우산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당시 전주는 한지 우산의 중심지로, 서울 상인들이 우산을 사러 몰려들 정도였죠.”
우산은 시대에 맞춰 달라졌다. 한지로 만든 우산은 1960년대에 비닐우산이 되었고 튼튼한 천우산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버티고 버티다 지우산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80년대 무렵이다. 이후 명인도 한지 우산에 대한 기억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현재는 지우산이 우리 전통문화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잊혀진 전통 우산을 다시 만들자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우산 공장은 문을 닫았지만, 대나무를 손에서 놓을 순 없어 뜨개바늘을 만들며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20여 년 지났으려나요? 하루는 TV를 보는데 외국의 지우산이 소개되더군요. 하얀 종이에 촘촘하게 펼쳐진 우산살의 모습이 새삼 그리도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지요. ‘아무래도 다시 우산을 만들어야겠다.’ 그때 다시금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연장도 내다 버린 데다 필요한 재료를 납품하던 공장들도 전부 문을 닫은지라 여러모로 난관이었습니다. 제작환경을 마련하기까지 2, 3년은 족히 걸렸어요. 결국은 지우산을 만드는 전 과정을 혼자서 소화해야 했습니다.

‘종이로 만든 우산이 비를 막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제작 과정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나요?

지우산紙雨傘이란, 대나무를 쪼개 얇게 깎아내 만든 살에 기름 먹인 종이를 발라 만든 우산을 말합니다. 우리 전통 지우산에서 사용하는 종이는 예로부터 전주 한지를 사용했습니다.
순수한 닥섬유로만 만든 종이라 수명이 길죠. 이질 좋은 종이에 여러 번 들기름을 먹여 충분히 말리면 비가 많이 와도 젖지 않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우산의 뼈대가 되는 중살과 장살을 조립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중살 가운데에 장살을 끼워서 조립하고 미리 낸 작은 구멍을 실로 꿰매 우산살을 엮으면 비바람에도 쉽게 뒤집히지 않는 튼튼한 우산살이 완성되죠.

윤규상 명인이 이야기하는 동안 곁에서 이것저것 세심하게 보살피고 신경 쓰는 아들 윤성호 씨는 명인의 첫 번째 이수자다. 회사에 다니며 잔일을 돕기 시작하다 본격적으로 지우산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에서 아들의 손으로 전해지고 있는 전통 지우산은 어떻게 유지되고 또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아버지인 윤규상 명인의 뒤를 잇기 전에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셨다고요. 후계자가 되기로 마음먹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연세는 많아지시는데 지우산을 만든다는 사람도 없으니 이 전통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제가 물려받을 수밖엔 없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전통이 오래도록 이어지기 위해 상품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발전, 개발하는 역할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고요.
이전부터 어깨너머로 조금씩 일손을 돕던 게 있으니 금방 익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본격적으로 배워보니 공정 하나하나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우산이 나오질 않더라고요. 과정도 복잡하거니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들도 있어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윤규상 명인과는 조금이나마 다르게 현대적인 방식으로 지우산을 받아들이셨을 것 같은데요, 지우산을 잇고 계승하시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단순히 비를 막는 기능 외에도 지우산의 조형미를 살린 상품 개발을 위해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어요. 벽에 부착하는 장식품이나 조명, 혹은 휴게공간에 쓰일 파라솔 형식 등 지우산의 모양과 색, 크기와 용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제작 단가를 줄이는 방식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세밀한 수작업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기계화하기가 쉽지 않으니 당장은 어려울 것 같아요. 현재로선 고품질 상품을 만들어 전통 지우산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두고 수요가 늘어난다면 차차 규모를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지켜온 전통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조금 더 당당하게 너를 밝히라며 전통의 손을 잡아당긴다. 그가 손에 넣은 낡은 바통은 그 덕분에 자신에 꼭 맞는 이름도 얻었다.
“아버지가 오랜 세월을 바치신 지우산을 사업화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우산 브랜드 ‘비꽃’을 만들었습니다. ‘비가 오면 펼쳐지는 꽃’이라는 의미를 담았죠.”
우리에게도 지우산이 있었고 있다. 언젠가 비가 오는 날, 천우산이나 비닐우산과 함께 지우산이 꽃처럼 핀 거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