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톺아보기
서원, 바람과 자연을 쓰다
글. 박정해 한양대학교 동양문화학과 교수
사진. 김정호, 해인사
문화유산 속 건축의 과학

자연 현상을 기에 근거해서 설명하는 자연 이해는 고대 이래로 오랜 전통이다. 기는 현상 세계의 물질, 생명, 정신이라는 존재 또는 현상을 담보해 주는 근원적 존재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에너지로 해석하는 바람을 풍수에서는 기氣 에너지라고 보았다. 생태기후학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미세기후가 건물에 미치는 열에너지로 보았다면, 관자管子01는 만물을 움직이는 것이 바람이라 생각했으며 강약을 가리지 않고 일정한 방향성과 치우침이 없는 공정한 존재로 여겼다.
인간이 자연의 기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감각을 통해서이다.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기인데, 이 같은 기를 감각을 통해 인식시켜 주는 매개체는 자연 기의 주체가 되는 바람이다.

01 관자는 보통 관중管仲이라고 불리며 귀족의 후예로 출생했다. 2700년 전 고대 중국에서 제후로서 탁월한 정치사상과 전략으로 변방의 제나라를 중국 최초의 패권국가로 만들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책(관중 管仲 )이 있다.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

바람의 이야기를 듣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 『금낭경錦囊經02』은 ‘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氣乘風則散]’니 기를 갈무리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람을 피하는 것만으로 무조건 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금낭경』은 ‘음양의 기는 내뿜으면 바람이 되고, 오르면 구름이 되고, 떨어지면 비가 되며, 땅속을 돌아다니면 생기가 된다’고 하며 바람과 기는 같은 음양의 기라고 대답한다. 무릇 음홀로 생生하지 못하고 양 홀로 성成하지 못하는 것이니, 음양이기陰陽二氣가 서로 돕고 서로 감응해야 생성의 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음양의 기는 ‘원래 하나의 기가 오르내림에 따라 음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일 뿐, 양이란 음의 체體요 음은 양의 용用’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바람과 기는 별개가 아닌 하나의 틀 속에 존재한다.
계절에 따라 부는 바람에는 만물을 생육하고 생을 마감하는 순환의 원리가 존재하고 있다. 누가 그런 원리를 주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연의 순환원리를 바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니 음인 기와 양인 바람은 같은 의미이고 함께 움직이는 체와 용이니 분리해서 생각해선 안 된다.

02 조선시대 음양과에서 배강으로 시험 본 책이자 취재 시험에서도 쓰인, 형기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풍수지리의 대표 경전.

건축과 바람

바람은 우리와 함께 하는 존재로 중요한 환경요소 중 하나다. 바람은 물과 함께 자연 속에서 인간의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서원 건축이 그 합리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바람의 특성을 정확히 알아 겨울철과 여름철, 아침과 낮, 밤에 부는 바람의 영향과 효과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계절과 온도, 지형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편으로 서원 건축은 담장과 문루門樓03, 그리고 높이차를 활용했다. 이와 함께 건축물이 입지하는 지형에 배산임수의 원리와 함께 전면에 문루와 동재東齋04, 서재西齋와 강당을 배치하는 공간구성 원리도 아울러 활용하고 있다. 즉, 바람길을 활용하여 바람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배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강당의 중앙 마루 벽면에 위치한 쪽창은 바람의 흐름을 빠르게 하는 제트jet효과를 활용하고 있으니, 나름 과학적인 기법이라 할만하다.

03 궁문과 성문 등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을 말한다. 04 동재와 서재는 서원 유생들의 기숙사를 말한다.
소수서원 강당의 쪽창

건축과 자연 그리고 사람

서원 건물 전체를 둘러싼 담장에는 외삼문과 내삼문을 뚫어 바람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는 효과를 높였다. 전면의 문루는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길을 막지 않고 곧장 불어 들어오도록 하는 역할이다. 즉, 낮에 물가에서 산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최대한 포용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더해 위로 부는 바람의 특성을 최대로 활용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고자 높이차를 이용한 공간구성과 배치법도 사용하고 있다. 여름에도 의복을 갖춰 입어야만 했던 유생들에게 바람을 이용해 무더위를 이겨내는 과학적이고 구조적인 배려를 하는 것이다. 반대로 겨울과 밤에는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강당 마루 중앙 벽체의 쪽창을 닫게 되면, 찬바람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같이 서원 건축은 바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공간구성의 원리가 종합적으로 고려된 건축이다. 현재와 같이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바람이 온도차에 의해 흐르는 원리를 활용했으니 당시로서는 가장 과학자적인 배치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전통건축에서 바람의 흐름을 활용한 사례는 매우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바람을 통해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지형조건을 활용한 사례는 해인사 장경각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서고書庫다. 바람은 물을 타고 흐르는데, 골짜기에 흐르는 물길을 타고 흐르는 바람길을 이용한다. 지형의 특징을 활용해 바람길을 활용한 것이니, 이보다 더 지혜로울 수는 없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법보전 내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과학성은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 천지 만물의 생성과 운동, 변화과정의 해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를 풍수라는 논리 속에 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현대과학이 갖지 못하는 자랑스러운 지혜다. 풍수 논리도 단순히 좋은 묘지로 복을 바라는 길흉론에 한정하는 잘못된 인식을 벗어나, 자연지형의 원리를 이용하여 합리적인 공간구성을 실천한 지혜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