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읽어드립니다 - 소장품
책을 숭상하며
귀한 물건을 수집하고 싶다
조선시대 책가도
글. 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

책과 귀한 물건을 그리다

책을 보관하는 시렁인 책가에 책과 화려한 색상의 물건들이 정갈하게 놓인 모습을 그린 그림을 책가도冊架圖라 한다.도1 조선 18세기 중반부터 책가도가 제작되었으나, 현재 전해지는 대부분은 19세기 책가도이다. 책가도에는 당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문방구와 중국에서 들어온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물건들이 섞여 있다. 조선 18세기 중반 이후 책을 비롯하여 특정 물품 수집을 좋아하는 풍조가 널리 퍼지고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문물과 서구의 회화 기법 유입이 활발해진 사회 현상을 책가도에서 읽을 수 있다. 물건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자 밝은 부분은 밝게, 어두운 부분은 어둡게 색을 칠하는 서양의 명암법을 사용한 점이 책가도 기물 표현의 독특한 특징이다.

도1. 책가도 병풍 조선 19세기, 8폭 병풍, 68.8x34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21년 이건희 기증

책장에 누워 있는 책들

책가도에는 책장 그림답게 책이 많이 있다. 책을 세워 놓아 책등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책 여러 권을 모아 눕혀 책 밑면이 보이도록 그렸다. 책 밑면 오른쪽을 엷게 칠하고, 색칠이 끝나는 부분에 흰색이나 검은색 선을 그어 책을 묶은 끈을 표현했다.
책들은 책갑冊匣으로 싸여 있는데, 책갑은 화려한 문양의 비단으로 씌워 있다.도2 덮개가 잘 닫힌 책갑 여러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나, 덮개가 살짝 벌어져 흰색 고리가 보이도록 표현한 책갑도 있다.도3 책과 책갑에 명암이 표현되어 있는데, 서구 방식과 달라 흥미롭다. 쌓여 있는 책과 책갑을 하나의 물체로 보지 않고 개별적으로 명암을 표현했다. 책과 책갑마다 밑면 아래쪽을 어둡게 칠했다. 그래서 책과 책갑 각각 윗부분은 밝고 아랫부분은 어둡게 했다.
책뿐만 아니라 책장도 색의 농도를 달리하여 공간감을 살렸다. 책장의 각 칸을 세 면이 보이도록 그려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바닥 면을 가장 밝게 하고, 옆면을 채색하면서 뒤로 물러날수록 어두워지도록 처리하여 물건이 놓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명암법과 공간감 구현은 조선시대 다른 그림에서 볼 수 없는 표현법이다.

  • 도2. 책갑
  • 도3. 덮개가 열린 책갑

조선시대 생활용품

조선시대 실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붓, 벼루, 연적과 같은 조선시대 필수 문방구가 책가도 곳곳에 있다. 제7폭 인장, 제8폭 복숭아 모양 연적과 벼루는 전해지는 실물과 모습이 닮았다.도4·5·6 제1폭 하단 붉은 석류는 조선 초 나라에 바치는 공물이었다. 석류 껍질 일부를 도려내어 안에 씨를 보이도록 했다.도7 씨가 많은 석류는 자손이 많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녀 공예품의 장식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제2폭 특이하게 생긴 작은 돌이 화분에 담겨 있다.도8 변함없는 돌은 변치 않는 문인의 이상을 상징한다. 괴이한 돌을 수집하는 풍조가 18세기부터 유행했다.

  • 도4. 인장
  • 도5. 벼루와 복숭아 모양 연적
  • 도6. 백자 청화 복숭아 모양 연적白磁靑畫銅彩桃形硯滴 조선, 높이 12.1cm, 지름 11.0cm, 덕수 5530
  • 도7. 석류
도8. 괴석

좋은 의미를 지닌 과실과 장식품

책가도에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귀한 과일과 장식품이 실생활용품보다 더 많이 있다. 제5폭 노란색 손 모양 과일은 중국 남부에서 재배되는 감굴류 불수감佛手柑이다.도9 불수감은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과실이나 책가도에는 종종 등장한다. 불수감의 ‘불佛’과 ‘복福’의 중국어 발음이 비슷하여 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복을 상징하는 또 다른 장식품은 제5폭 산호 걸이에 걸린 박쥐 노리개다.도10 박쥐 ‘복蝠’이 ‘복福’과 중국어로 발음이 같다. 또한 제7폭 산호 가지에 걸린 ‘ㅅ’ 자 모양 장식은 특경特磬으로 특경의 ‘경磬’과 ‘경慶’의 발음이 같아 기쁘고 즐거운 일을 뜻한다.도11 제4폭 잉어 모양 장식은 잉어가 변해 용이 되었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 고사에 따라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름을 의미한다.도12 이렇듯 좋은 의미를 지닌 장식품이 책가도에 많다.

  • 도9. 불수감
  • 도10. 박쥐 모양 노리개
  • 도11. 특경 모양 노리개
  • 도12. 잉어 모양 장식품

소유하고 싶은 화려한 수입품

책가도 그릇 대부분이 중국 자기와 금속기다. 목이 긴 병과 항아리, 주전자, 잔, 뚜껑을 덮은 그릇 등 자기 종류와 기법이 다양하다. 짙은 붉은색, 초록색, 푸른색 자기가 많으며, 표면을 금으로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한 것도 있다.도13 표면에 균열이 있는 백색 병은 책가도에 많이 등장하는 자기다.도14 원래는 송대 가요哥窯에서 만들어진 자기이지만, 청대 강희 연간 경덕진에서 모방해 다시 제작했다. 꽃 모양 장식이 부착된 백색 자기는 조선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비싼 중국 자기이다.도15
그리고 짙은 녹색의 금속기도 있다. 제5폭과 제7폭에 향로가 있다.도16 제6폭 금속기는 중국 고대 청동기 ‘고觚’ 모양을 따른 것이다.도17 입구 부분은 나팔 모양으로 벌어지고, 몸통이 길고 몸통 가운데 북과 같이 둥근 형태의 금속기이다. 이처럼 책가도에는 수입 중국 자기를 선호하고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도13. 색이 진한 자기
  • 도14. 균열이 있는 병
  • 도15. 꽃 모양 장식이 부착된 주전자
  • 도16. 금속 향로
도17. 고 모양 금속기

인간의 이야기를 간직한 물건 수집

이렇듯 책가도에 물건이 빼곡하게 많이 있다.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도 있지만, 생김새가 특이하거나 특별한 상징성을 지녀 소유하고 싶은 귀한 물건도 있다. 조선시대 실제로 귀한 물건을 소유할 수 없기에 책가도로 대신했을 것이다.
책가도에서 당시 책을 숭상하는 문화와 사물에 대한 소유욕과 수집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소유욕과 수집 욕망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고 보존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