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시간 - 여기, 박물관
1,300년 전 지하 세계로의 초대
글. 권영우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부 학예연구사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 〈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
2022. 7. 16. ~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바로가기
  •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서는 1,300년 전 투루판 지역의 장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아스타나 고분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투루판시에서 동남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투루판의 옛 도성유적인 가오창고성의 북쪽 근교에 조성된 지배계층의 공동묘지로, 가오창고성이 번영했던 국씨고창국 시기(502 - 640년)와 당나라 지배기(640년 - 8세기 후반) 동안 많은 무덤이 만들어졌다.

  • 3F 중앙아시아실
아스타나 고분 전시실 입구 전경

20세기 초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하는 실크로드 탐험대들이 아스타나 고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신중국이 성립되고 1959년부터는 중국 신장박물관이 집중적으로 발굴해 현재까지 400기가 넘는 무덤이 확인되었다. 폐쇄된 무덤 공간과 투루판의 매우 건조한 기후 때문에 이곳에서는 복희와 여와 그림,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과 토기, 음식, 종이문서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나왔고, 심지어 대부분의 시신도 미라의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초 일본의 오타니(大谷) 탐험대01가 아스타나 고분에서 수집한 85점의 전시품에 대한 조사 성과를 특별 공개하는 자리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특색은 부장품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시품을 널방, 널길, 옆방으로 구분된 무덤의 내부 공간에 따라 분류하여 전시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01 일본 불교 정토진종 니시혼간사파의 문주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가 조직하여 파견한 탐험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소장품은 오타니탐험대가 1902~1914년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수집한 유물이다.

먼저 무덤의 널길과 널방 입구에 해당하는 진열장에는 묘표와 진묘수를 전시했다. 묘표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판 모양의 벽돌이다. 중국에서는 주로 돌에 글자를 새겼지만 돌이 귀했던 투루판에서는 흙을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당시 사람들은 먼 훗날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묘표를 만들어 무덤의 널길에 두었다. 널방 입구에는 무서운 모습을 한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 한 쌍을 밖을 향해 두었다. 이는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널길 양쪽의 옆방에 두었던 인형들을 전시했다. 문인, 무인, 환관, 여인, 악사 등 다양한 인형들은 죽은 자의 생활을 돕는 시종의 역할을 했다. 이 인형들도1의 발아래에는 나무심이 삐져나와 있는데, 이 뾰족하게 나온 나무심을 무덤 흙바닥에 박아 인형을 세워두었다. 전시에서는 흙과 비슷한 색과 질감의 대형 받침대에 인형들을 자연스럽게 배열하여 무덤 현장의 느낌에 가깝게 연출했다. 인형들 가운데 〈말을 탄 무인상〉도2은 말, 무인의 상반신, 하반신이 분리되어 파편으로 남아 있던 것을 접합해 새롭게 전시한 것이다. 아울러 복원 과정에서 컴퓨터 단층촬영(CT) 조사도3로 밝혀진 상의 제작 방법도 소개했다.

무덤의 인형들 전시 모습
도1. 문인상과 무인상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7~8세기, 가운데 몸체 높이 28.0cm, 본관4139, 4141, 4142
도2. 말을 탄 무인상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7~8세기, 높이 36.0cm, 본관4105
도3. 말을 탄 무인상의 컴퓨터 단층촬영(CT) 사진

죽은 사람이 안치되었던 널방에 있었던 부장품으로 명기와 나무 받침, 복희와 여와 그림, 그 밖의 다양한 부장품들을 전시했다.
〈구슬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도4은 이 유물이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입수되었을 때의 자료에 근거해 명기와 나무 받침이 한 벌의 구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에서는 실물과 유리건판 사진을도5 함께 보여주어 100년 전 입수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원래 이 명기들에는 포도, 호두, 밀로 만든 과자 등의 다양한 음식이 가득 담겨 있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머리맡에 놓인 이 상차림은 저승에서 영원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성찬이었다.

구슬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 전시 모습
도4. 구슬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6~7세기, 받침 길이 83.0cm, 본관3830, 고적28333
도5. 구슬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 유리건판 사진, 1915년경 촬영

마지막으로 박물관이 소장한 세 점의 복희와 여와 그림 가운데 가장 큰 〈복희와 여와 그림〉도6을 특별 공개했다. 중국 고대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가 그려진 그림은 투루판 지역에서 6세기부터 8세기 중반까지 많이 만들어져 주로 무덤 널방의 천장에 설치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2미터가 넘는 복희와 여와 그림을 실물 크기로 복제하여 전시실 천장에 매달아 무덤 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한 두 신이 각각 들고 있는 컴퍼스와 구부러진 자는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으로 이루어진 우주관과 관련이 있다. 두 창조신이 서로 몸을 꼬고 있는 모습으로 우주와 만물이 생겨나는 것을 상징하는 이 그림에는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 다음 세상에서 풍요롭기를 바라는 투루판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도6. 복희와 여와 그림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7세기, 110.0×238.0cm, 본관4178
복희와 여와 그림 전시 모습

투루판은 고대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요충으로서 번영했으며 북방의 유목세력이 진출하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중국도 이를 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군사적으로 진출했던 곳이었다. 그 결과 투루판은 서역 문화와 중국 문화가 만나는 접경의 성격을 지닌 곳이 되었다. 아스타나 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부장품에는 투루판의 이러한 지역적 특색이 잘 드러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부장품 속에 나타나 있는 동서 문화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더 읽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