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호부터의
    현장 에세이를 전해 드립니다

    1970년 시작된 이야기
    박물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다

박물관과 현대사회

이난영(前국립경주박물관장)
『박물관신문』 1976년 1월·2월 (제55호)

사람에 따라서는 현대사회를 PR 시대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극도로 발달한 매스미디어와 천천히 차분하게 알고 익히려는 경향이 엷어진 사실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세계명작? 그걸 언제 다 읽고 있느냐고 한다. 세계명작의 전집류全集類는 무척도 많다. 그런 책들은 서재의 장식용으로 족하다. 그러기에 장정이 호화롭고 비싼 것일수록 더 잘 팔린단다. 바야흐로 PR 시대는 그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박물관까지에도 PR 담당 부서가 신설되고 현대사회에의 적응에 힘쓰게 되어있다. 문제는 이 PR의 한계 적응도에 있는 점이다. 비단 박물관 활동뿐만 아니라 이것은 인간이나 학문, 예술에까지 PR의 정도가 지나쳐 대중에게 과장하거나 영합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장 영합은 곧 타락을 뜻하게 되기도 한다. 「느리나 정확하게」라는 학문에의 길마저 졸속한 PR, 대중에의 영합으로 본연의 자세를 잃고 있는 사실은 깊이 생각할 문제일 줄 안다. 잘 영글은 석류 열매가 소리를 내며 터지듯 학문도 속에서부터 우러나 터져야 한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하고 고고한 척하라는 뜻은 아니다. 가능한 한 두 길은 양립해야 하겠다. 특히 박물관 사업이란 이 근래 사회의 요망要望이 다양하고 넓어졌기 때문이다. 알차게 속에서부터 영글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PR 시대에 알맞은 보급업무도 중요하고 시급해 졌다. 박물관이 사회교육 기관임을 입으로는 떠들고 인정하면서 박물관 사람들 자신은 아직도 사회 교육적인 활동을 즐겨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으려 한다. 사회 교육적인 활동을 잘못 인식하고 있어서 PR만이 그 모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馬]을 강가에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곧 교육이라는 관념이 이제는 그 말로 하여금 강가의 물을 마시도록 해야 한다는 단계에까지 온 셈이다. 전시실에 끌어들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전시실에서 배우고 즐기도록 하는 것이 오늘의 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과제로 부각된 것이다. 지나친 PR, 지나친 영합은 있을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이나 앉아 보고만 있어서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박물관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은 뻔한 일일 수밖에 없다.

‘두더지의 辯’은 1970년 『박물관신문』 창간과 함께 수록된 박물관 사람들의 현장 에세이입니다.
본 원고에서는 원문을 현대 표기법에 맞춰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