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톺아보기
기록을 담기 위한 기록
글. 박지선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복원으로 본 의궤 제작기술

유물복제, 과학과 인문학적 연구의 총체

복제란 본래의 것을 똑같이 만드는 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미를 추구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복제는 만들어졌다. 과거에 장인들은 위대한 선인들의 작품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똑같은 재료를 선택하고, 재현하여 제작기법과 예술정신을 익힐 수 있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복제의 동기와 목적도 변화하였다. 공부의 과정으로 복제품을 만들기도 하였고, 진귀한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 복제를 의뢰하기도 하였으며,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위조품으로의 복제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복제의 역사는 계속되어 오다가, 20세기 후반부터 복제는 문화재보존을 위한 예방보존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복제품

특히 종이나 직물인 유기물로 만들어진 서화문화재는 오랫동안 공기와 빛에 노출하면 산화가 촉진되어 보존수명이 단축된다. 그러므로 원 유물 대신 복제품을 제작하여 전시나 연구에 활용하게 되었다. 유물을 복제하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재료, 제작기술을 조사하여 제작 당시의 것과 똑같이 재현해야 하는데 그 조사에는 과학기기를 이용한 분석과 기록을 통한 인문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원본은 영국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어 안타깝게도 원본이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없기에 복제품을 전시와 교육, 연구의 목적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복제본 제작 과정에서 원본을 조사할 수 없었으므로 『기사진표리진찬의궤』(1809)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장서각 소장 『혜경궁진찬의궤』(180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순조순원왕후가례도감의궤 上』(1802), 『순조순원왕후가례도감의궤下』(1802), 『효명세자책례도감의궤』(1812), 효명세자책례도감의궤 上』(1819)의 재료를 과학적으로 조사·분석 하였고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기록을 조사하여 의궤제작에 사용된 재료도 조사하였다.

세월의 흔적 담은 고색복원 복제

복제방법을 크게 분류하면 원형복제와 현상복제가 있다. 원형복제는 원래 제작되었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고, 현상복제는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오염이나 충해 등의 손상까지도 표현하여 실물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복제는 실물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원형복제 이지만 시간이 흐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도록 고색복원으로 복제하였다.

의궤는 어람용과 분상용으로 구분되어 제작하는데 어람용은 분상용에 비해 종이, 표지직물, 변철 등 모든 재료에서 품질이 높았으며 묵서도 정교하고 도설도 정성껏 채색하였다. 의궤 복제를 위한 재료는 크게 종이, 도설의 채색안료, 표지비단, 변철이다. 이번 복제 대상인 『기사진표리진찬의궤』는 어람용 의궤이다. 종이의 품질의 차이는 밀도, 두께, 표면의 평활도, 백색도로 구분된다. 문헌에 의하면 어람용은 초주지, 분상용은 저주지를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조사 결과 실제 유물과 일치 하고 있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복제과정은 1. 조사-비슷한 시기 의궤 재료의 과학적 조사와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내용분석 2. 조사결과에 기초한 재료제작(종이, 표지비단, 변철) 3. 인쇄 4. 채색 5. 제책-장황마무리로 진행되었다. 조사는 비슷한 시기의 의궤에 대해 과학적 조사를 하였다.
표지직물은 직물조직을 현미경 촬영하여 실의 굵기, 조직의 조밀도를 측정하였다. 그리고 표지의 색상은 색차 값으로 측정하였는데 현재 보이는 색은 세월이 경과 하면서 오염, 갈변한 것이므로 표지 안쪽에 가려져있던 갈변 전의 녹색을 참고하여 재현색상을 정하였다.

비슷한 시기 의궤 표지 실견(현미경 조사)

장인의 손길, 첨단 기술의 합작

『기사진표리진찬의궤』에는 상품도련지가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련搗鍊이란 종이를 제작한 후 수분을 골고루 가해 두드리는 것으로 도침搗砧이라고도 한다. 종이는 많이 두드릴수록 얇아지고 표면이 매끄러우며 질겨지지만, 도침은 하면 할수록 그만큼 공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람용에는 품질이 높은 초주지, 분상용에는 저주지가 사용되었다.
이번 복제에 사용될 종이는 의궤종이 재현의 경험이 풍부한 의령의 국가무형문화재 신현세 장인이 제작하였다. 종이는 백닥섬유를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잿물에 삶아 섬유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백색도를 높이기 위해서 야외에서 일광표백 하였다. 하얗게 된 백닥은 물속에서 한줄기씩 확인해가며 남아있는 티를 제거하였고, 전통방식대로 두드려서 고해하였으며 황촉규 뿌리를 분산제롤 사용하여 조선시대 초지방식인 외발뜨기 하였다. 천천히 누름목의 무게를 늘려가며 물을 제거한 후 종이는 목판에 붙여 건조하고 도침하여 상품도련지를 재현하였다. 표지직물은 초록면주草綠綿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명주와 비슷한 평직비단이다. 비단은 실의 굵기와 밀도를 맞춰 주문·제작하였고 초록색은 천연 쪽염을 하였다.

준비된 도침지에 글씨와 도설을 재현하기 위하여 인쇄하고 채색하는 작업을 하였다. 본래 어람용 의궤의 글씨는 또렷하고 정성스럽게 필사하였으나 복제본에서 필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인쇄하였다. 최근 디지털기술이 발달하여 인쇄방식, 프린터의 종류도 다양화하였으나 의궤의 글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기사진표리진찬의궤』는 소장처가 제공한 사진자료 밖에 없었으므로 원본 데이터에서 글씨와 적색계선, 도설부분을 디지털작업으로 분리하여 특수평판인쇄(offset)하였다.

도설 채색

테두리 먹선이 인쇄된 도설은 각각의 색상에 맞추어 비슷한 시기의 의궤의 도설안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채색하였다. 적색은 편연지와 당주홍, 황색은 동황, 녹색은 석록, 청색은 삼청, 백색은 진분으로 의궤기록대로 채색하였으며 그 외에 금박, 금분, 은분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인쇄에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은 묵서하였다.
인쇄와 채색이 완성된 내지內紙는 순서대로 정리하여 지정紙釘으로 고정한 후 준비된 표지를 앞뒤에 붙여 제책製冊하였다. 표지에는 백색비단에 책이름을 묵서한 후 테두리에 붉은 띠를 두른 표제標題를 붙였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변철을 국화동으로 박아 장황粧䌙을 마무리하였다. 변철은 실견한 의궤의 성분분석 결과를 근거로 제작하였는데 기록에 의하면 熟銅 14兩, 含錫 7兩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구리 66%와 아연27%의 합금인 황동이였다. 제작한 변철은 샘플 제작 후 실제 의궤의 변철과 비교하여 색맞춤하여 세월의 흔적이 보이도록 하였다. 변철의 문양은 전통방식대로 쪼임기법으로 표현하였다.

변철 제작

세계가 인정한 전통한지 기술의 우수성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복제는 인쇄를 제외한 모든 재료와 기술을 의궤 제작 당시와 동일하게 전통방식으로 재현하였다. 어람용 의궤 종이로 사용된 상품도련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우수한 종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종이 표면의 평활도와 광택, 높은 밀도로 강도가 매우 높은 종이이다. 최근 서양에서의 양피지의 보존처리에 도침한지가 채택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시대까지 한지는 우수한 종이였다. 의궤종이뿐 아니라 경전에 사용된 닥지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서로 다투어 얻고자 하는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식 초지방법이 도입되고 기계화된 서양제지법이 수입되면서 전통기법과 재료도 단절되어 전통방식으로 한지를 제작할 장인도 사라져 버렸다. 21세기에 들어와 한지의 우수성을 재확인하고 그 기술이 단절됨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전통 한지에 대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복제사업은 의궤종이를 복원·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비단, 변철, 전통 안료를 재현·복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에서 보이는 전통 기술의 우수성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