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K-힙’의 요람, 우리 문화를 향한
기업의 러브콜
글. 서유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박사, <트렌드코리아 2022> 공저
기업의 아이디어로 재탄생한
전통문화 콘텐츠의 경쟁력

최근 들어 MZ세대의 문화, 예술 등에 대한 관심 및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다. 이에 많은 기업이 문화, 예술에 많은 공을 들이며 소비자에게 새로운 차원의 브랜드 경험을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통의 멋과 맛, 기업의 아이디어로 재탄생한 전통문화 콘텐츠 사례를 통해 경쟁력 있는 전통문화 소비의 새로운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3층 뮷즈(MU:DS) 브랜드 홍보관

반가사유상 입은 ‘K-힙’ 패션

최근 의류 브랜드 LF 헤지스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 브랜드 ‘뮷즈(MU:DS)’와 협업해 국보 문화재 ‘반가사유상’을 테마로 캡슐 컬렉션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 콘텐츠와 협업을 이어오는 헤지스의 첫 문화재 협업 콘텐츠로 그 주인공은 바로 국보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분위기로 MZ세대 사이에서는 불멍, 물멍보다 ‘반가사유상멍’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마음의 위안을 주는 문화재다. 헤지스 반가사유상 캡슐 컬렉션은 전통의 멋에 반응하는 MZ 취향을 담아 의류 및 모자, 머플러, 에코백 등 총 11가지 아이템으로 구성했다. 타이포그래피, 프린트 등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힙한 것으로 인식하는 MZ에게 국보 문화재를 감각적으로 해석한 컬래버 상품이야말로 가장 신선한 아이템인 셈이다.
박물관과 패션의 만남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 2021 서울패션위크의 한 장면은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바로 영화배우 배두나가 국립중앙박물관 내 역사의 길에서 유물과 상아빛 공간 여백 사이로 매끈한 구슬처럼 걸어 나오는 장면이다. 야외 열린마당을 걸으며 그녀 뒤에 펼쳐진 서울의 화려한 야경조차 단아한 산수화처럼 보인다. 온라인에 공개된 트레일러의 장면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와 외부를 배경으로 한 국내 디자이너들의 온라인 패션쇼를 통해 ‘한국의 미美’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반가사유상과 협업한 의류기업 출시상품(출처: 헤지스 공식 홈페이지)

MZ 취향저격 ‘헤리티지 디자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놀이문화로 꼽히는 ‘인생네컷’을 문화재에 접목시킨 앱 기업도 있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한 행사 내용을 정리한 ‘의궤’의 디자인을 활용해 한정판 프레임을 출시했다. 인생네컷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한국 문화재 프레임으로 촬영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하면 이벤트에 자동 참여하게 되며, 추첨을 통해 오색찬란 코리아 휴대폰 케이스를 증정하는 프로모션이다. 의궤라는 생소한 유물에 대해 젊은 세대의 관심을 이끈 이벤트로 의미와 흥미를 사로잡은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마패 T머니 카드’도 전통을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풀어낸 사례다. 지난해 서울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일반제품 부문 대상을 수상한 ‘마패 교통카드’는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말을 빌리기 위해 사용한 마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다. 옛 선조들이 마패를 보여주고 말을 빌려 탔던 모습을 콘셉트로 오늘날 교통카드 디자인에 적용한 것이다.
조선시대 스마트한 이동수단이었던 마패가 오늘날 티머니로 계승된다는 점에서 이미 온라인에서 ‘대중교통 힙하게 타는 방법’으로 입소문을 타며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통적인 모양과 참신한 사용법으로 고객에게 재미를 주는 마패 T머니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기념품 그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F&B(식품음료) 기업도 무서운 상승세를 타는 박물관 상품에 러브콜을 보냈다. 롯데칠성음료는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한국 미술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한 미술품과의 협업 제품을 선보였다. 그 일환으로 국보 〈백자초충문병〉 이미지를 라벨에 입힌 주류 제품을 출시해 판매 수익금 일부를 간송미술문화재단의 문화재 보존사업에 활용할 예정이다.
하이트진로음료는 국립박물관 상품 브랜드인 뮷즈와 손잡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의 상품관과 온라인 뮤지엄숍에서 일정 액수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자사의 보리음료제품을 증정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가마솥 보리숭늉을 현대화한 음료와 국립박물관 상품 모두 고유의 문화를 계승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패 디자인의 교통카드(출처: 티머니)

오프라인 매장의 ‘지속가능한 공간경험’

기업의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전통은 가장 ‘힙’한 디자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에서 가장 전통적인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가회동 대로를 따라 올라가다 한옥과 양옥, 중정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 코스메틱 건물이 등장한다. 아모레퍼시픽이 조성한 ‘설화수의 집’은 제품보다 공간과 예술에 초점을 맞추며 현대 K-뷰티 소비자의 취향과 감각을 사로잡는다. 최근에는 백자 디자인을 적용한 제품 패키지를 홀리데이 컬렉션으로 선보여 문화재 컬래버 행보를 다각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 기업은 제품과 한국 전통문화의 경계 허물기로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 공간의 경우, 제품 체험에 중점을 둔 이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공간 경험을 중요시 하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유행의 변화 속에서도 오래 생존하는 전략으로서 ‘전통’은 지속가능한 유일무이의 아이템이자 경쟁력이다.

백자 디자인의 용기 패키지(출처: 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이렇듯 최근 유통가의 흐름과 주요 사례를 볼 때, 우리 전통문화는 시대와 세대, 세계를 잇는 가교로서 소비자뿐 아니라 미래 기업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는 요람이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아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인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현대 소비사회의 기업들이 앞으로도 깊이 새겨야 할 가치가 될 것이다.